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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악을 근심하다>

어제 어느 "유학파 목사"님의 가정폭력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여러 생각들이 있겠고, 비난이 난무하겠다만.. 아무튼 그런 것들은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는 악의 평범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던 악의 평범성이 말 그대로 정말 평범하게 자리잡고 말았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드러나지 않으면 악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방치하고 모두 자기 삶에 코를 박은 채 "나"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면서 뭔가 드러나면 일제히
돌을 던진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나는 저렇지 않지. 저 사람과 나는 다르지' 하는 생각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악하다.
본인이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간에.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한 폭력을 경험하며 산다.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피해자 코스프레에는 능숙한 이들이
자신이 가해자가 된 현실에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프면 너는 더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게 문제가 되는 일은 그에게는 더 큰 무게임을 이해해야 한다.

공감이 사라진 시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정죄가 빠른 사람들.

가장 악한 존재는 "유학파 목사"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가 아닐까?

그가 곧 나이며
그래서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며
함께 기도하고
내 삶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평범한 의인이 되면 좋겠다.

버니 샌더스 열풍이다 .
그가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잘나서가 아니다.

그가
99%의 아픔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그 아픔이 내 아픔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자비한 정의가 아니라
긍휼이며, 그렇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은
더불어 함께다.


유학파 목사.
그 사람이 나다. 아파하며 기도하고
내 삶이 그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민감하게
"너"를 붙잡아야 한다.

너는 곧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