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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 흘리는 눈물

오늘 아내가 부엌에서 달걀조림을 하는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두어 달 쉬더니 여성호르몬이 넘쳐나나 봐?" 몸이 아파 쉬는 동안 집안 일에 손을 대다보니 잔소리가 많아졌다. 쫑알거리는 나를 향해, 차줌마 코스프레 하는 내 뒤통수를 보며 아내가 의미심장하게 던진 말이다.

여성스럽다 - 난 이 말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맥락을 안다. 여성에게 쓰일 때는 칭찬이다. 여성스럽다는 말은 적어도 남자의 세계에서는 여성의 매력이 있다는 말이다. 여자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여성 역시 '여성스럽다'는 말을 할 때는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남성에게 이 말이 사용될 때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건 욕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말은 그냥 욕이 된다. 정말 여자같은 남자일지라도 그가 트랜스젠더를 희망하지 않는 이상, 남자들에게 그것은 욕이다.

이런 정서를 전혀 개의치 않는 아내는 나를 보며 여성호르몬이 넘쳐나는 것 같다고 했다. ..음.. 욕 한 거 맞다. 나 오늘 욕 먹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았다. 자존심 세우느라 눈물이 많았다고 하는 것이지, 실상 울보라 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울보" 화가 나도 울었고,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 힘 없는 막내인 것이 서러워서 울었고, 혼나서도 울었다.

참 많이 울었다.
많이 울어서 나를 놀리는 이들은
여자 같다고 했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울지 않는다. 아니, 우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젠 좀 남자다워진 것인가? 아니다. 우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나는 이제 알아버렸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여자들이 새벽에 묘지를 찾아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새벽에 공동묘지를 갔다. 새벽이 제일 어두운 때였는데, 날이 지나고 율법의 족쇄가 해제되는 바로 그 순간에. 안식일이 지나자마자였다.
긴긴 밤을 잠도 못 잤으리라. 잠이 올 수가 없었으리라. 그토록 당당하던 스승이 모략으로 체포되어 형벌 속에 죽어버렸다. 그 죽음을 바로 코 앞에서 목격했다. 죽음의 증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다. 밤을 새우고 그들은 준비한 향품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 새벽에.

그런데 이게 왠 걸. 무덤이 비어있지 않은가? 누군가 스승의 시신을 훔쳐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 살아있을 동안 권력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던 그가 아니었던가. 아마도 힘을 잡은 그 사람들은 시신까지도 훼손했을 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의 악랄함과 무서운 분노를 직접 보지 않았던가. 시신이... 없어졌다.

제자들에게 알렸다. 그들이 한 차례 빈 무덤을 보고 갔다. 갔다.. 다들 그냥 가버렸다. 그런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가 한 명 있다. 울면서. 울면서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벌벌 떨며,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걱정되어 흘리는 눈물.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막막해서
무기력해서 흘리는 눈물. 울음.

여러 의미가 복합적이다. 그 눈물은.
이 뒤섞인 울음의 의미를 단일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눈물이 의미하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그리움이 아닐까. 보고 싶어서 흘리는 눈물이다.

새벽 공동묘지. 지금도 선뜻 나서기 꺼려지는 발걸음이다. 어둠을 헤치고 더듬어야 하는 상황은 그닥 달갑지 않다. 그런데도 가야 했다. 사랑하는 스승님을 향한 마음은 새벽도, 공동묘지도 막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단숨에 달려온 무덤인데.. 시신이 없다. 보고 싶어 달려왔는데,,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영원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아파하시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해 서로 눈길도 나누지 못했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얼굴도 못 만져봤다. 손도 못 잡아봤다.

그 애절함으로 쏟는 눈물이었다.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보고 싶어 흘리는 눈물에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선 땅에, 그녀의 발이 머물렀던 곳에 눈물이 스며든다.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까... 그토록 애절할 수 있을까.. 나는..?

나는 요즘 울지 않는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너무 다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게 내 모습이다.

울어야 할 때인데. 울어야 살 때인데.
우리는 울지 않는다.
아니
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