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난가? 병을 해결하기

목사wannabe 2026. 2. 13. 08:16
 

사도행전 7장 37절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난가? 병을 해결하기

20260213

 
 

스데반은 모세를 통해 예수를 증언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예수라는 점을 확증하기 위해서 모세의 말을 빌려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37). 모세의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구원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이 땅에 오실 그분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 매우 중요한 방향이며 가치입니다.

'난가? 병'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정치 권력을 탐하는 이들의 무지함을 풍자하는 인터넷 은어인데, 작년 봄즈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씨가 오프닝 때 "현대인들의 난치병 중 하나가 난가병"이라고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배철수 씨는 "보통 사람들은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돼'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기 성찰과 비슷한 주제 파악을 하기에 난가병에 걸릴 일이 적다"고 하면서 영화 '콘클라베'를 예로 들었습니다. 당시가 선거철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청취자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대선에 뛰어든 후보자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객관적 자기 평가의 대표적 문장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있을 텐데, 이 말을 현대어로 바꾸면 '난가? 병'이라 하겠습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스스로를 브랜드화 시키는 퍼스널브랜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한 겸손한 성찰은 시대를 막론하고 정말 중요한 인격적 성숙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성찰의 깊이가 없이는 스스로 메시아 신드롬에 빠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맥락 하나는 자기 중심성의 탈피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 예수가 내어주신 십자가의 대속과 구원압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영웅이 되고자 하는 순간, 예수는 나를 높게 세워주는 수단이 되고 맙니다. 죄인이 중심이 될 때, 종교는 타락하고 변질될 뿐입니다. 스데반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37). 모세는 출애굽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세의 서사를 보면, 그는 좌절과 도망, 방황을 통해 철저하게 자기 중심성이 깨어진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출애굽 사건이 완전한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말입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워주실 것이다.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는 유대교 모든 사람들이 대망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오셔서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다윗의 왕조와 같이 세우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모세의 말로 그 자기 중심성을 깨뜨립니다. 메시아는 왕조의 부활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세속적 성공이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중요한 방향과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시고 나를 사용하실까요? 그렇습니다. 확언하건데,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나를 그렇게 사용하실 겁니다. 다만, 그것이 성공과 소유와 잘남과 유명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실 때,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자기부인으로, 헌신과 내어줌, 희생으로 사용하실 겁니다. 따라서 나인가? 싶다면 십자가의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름 없는 헌신에 나를 내어주고 나를 사용하는 겁니다. 빛도 없이, 영광도 없이 십자가의 주님처럼 섬기는 겁니다. 나를 부르시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나인가? 싶을 때마다 십자가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