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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절 묵상

언제 기적이 나타나는가

사도행전 7장 36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언제 기적이 나타나는가

20260211

 
 

거절과 그로 인한 상처와 좌절로 방황하는 모세를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찾아내셔서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와 히브리 민족의 광야 40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36). 수많은 거절과 공격의 40년, 광야의 거친 날들이 40년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바로 기사와 표적의 40년이기도 합니다. 기적의 조건이 이렇습니다.

​한국사회에 기독교이단의 폐해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입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대체 왜 이단에 빠지는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의 일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의 온갖 가스라이팅과 (나름) 신비한 일들이 많아, 믿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단순히 교리적 완전함만으로는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중심에는 그들이 보여주는 신비한 현상과 능력이 반드시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도 어렵습니다. 신앙에는 신비한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에는 기적과 신비가 가득해서 무조건 부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올바른 분별이 필요합니다. 이 분별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스데반은 모세와 히브리 사람들의 출애굽 이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36). 스데반의 설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일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유대교가 최고로 꼽는 지도자 모세를 말하면서, 모세보다 높으신 분 예수를 전하고자 합니다. 모세와 함께 한 광야 40년은 반복되는 비난과 원망, 공격의 40년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모세는 꿋꿋하게 거친 걸음을 앞장섰습니다. 그 40년이 기사와 표적이었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한 사람, 그리고 그의 순종이 드러나는 현장으로서의 광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시와 표적의 조건입니다. 언제 기적이 나타날까요?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나를 내어드리는 한 사람의 순종이 있을 때입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분별하는 기준이 이것입니다. 신처럼 숭배를 숭배를 받는 교주는 권력으로 군림할 뿐, 선한 목자와 같이 목숨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복적으로 장미빛 화려한 보상과 대가를 말하지만 당장의 광야를 돕고 섬기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친절해도 그 친절로 옭아매고 삶을 통제하려 합니다. 섬김과 희생이 아니라 강요와 복종을 주장합니다. 유대주의와 율법주의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정통이라는 교회들도 이러지 않습니까? 깨어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욕망으로 사이비 같은 왜곡된 종교가 될 뿐입니다. 예수를 말하면서 예수를 전혀 닮아가지 않는 가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언제 기적이 나타날까요? 광야 같이 거칠고 메마른 날들, 그런 날들을 살면서도 사랑과 희생, 섬김과 동행으로 하나님의 뜻이 될 때, 그럴 때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으로 사는 내가 기적이며, 거친 광야의 걸음에도 함께하는 우리가 기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신비한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헌신이 정말 진심의 사랑이어서, 그 사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십자가는 주께서 몸으로 이루신 사랑과 순종의 기적입니다. 이 사랑이 생명이 되었습니다. 기적은 먼 데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