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22절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사도행전 1장 22절
복음에 필요한 사람
가룟 유다로 인해 생긴 결원을 보충하고자 베드로는 사도를 한 명 선출하고자 제안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우신 12사도는 새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2) 베드로가 제시한 사도의 조건은 증인과 증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참여한 증인이어야 하고, 부활의 증인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할 증언자여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을 저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태도이고, 둘은 하나님이 필요로 할 때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신앙의 태도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죄인의 인생을 구원할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필요로 하게 마련입니다. 돈을 인생을 구원할 유일한 것처럼 떠받들기도 하고, 권력을 소유하려 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쇼츠나 릴스를 하나님처럼 여기며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신은 잠깐 즐긴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끊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를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여긴 태도가 쌓여 뿌리를 내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요 죄인의 필요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필요에만 집착해 하나님을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삼을 때입니다. 이런 식의 태도를 종교 중독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누구나 신앙의 초기(초보)에는 나의 필요로 출발합니다. 조금 더 성숙해지면 죄인의 현실에 절감하여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가치의 기준이 전복되어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은 거의 없어집니다. 믿음의 성도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필요에 순종하는 태도로 말입니다. 가룟 유다로 결원이 생긴 사도들은 한 명을 더 충원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사도로 적합할까요? 좋은 가문의 권력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재력가? 핍박을 잘 이겨낼 정치력이나 통솔력이 있는 사람? 이때 베드로가 제안하는 것은 정말 단순했습니다. 그것은 증인과 증언입니다. 정말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당시엔 무거운 기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핍박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불과 몇 달 전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과 결탁한 유대교의 핍박은 여전히 살기등등했습니다. 이럴 때 증인이라고요? 이것은 같이 죽자는 말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의 조건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과 사랑과 희생과 부활을 증언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이 하나님의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하기만 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필요에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
쓰임 받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필요에 민감한 것처럼 하나님의 필요하심, 하나님의 요구에도 조금 더 마음을 열면 좋겠습니다. 순종을 좀 더 깊이 받아내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십자가를 전할 당신의 증인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겸손한 척 하기 보다, 나라도 쓰시겠다면 내어드리겠다고 고백하는 십자가를 닮은 삶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