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20절
일어나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가되 아무 의심도 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음이라 하시니라

해석의 자리에서 순종의 자리로
20261016
여전히 지붕 위에서 환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성령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일어나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가되 아무 의심도 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음이라 하시니라"(20). 환상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던 베드로에게 성령은 찾아온 사람과 함께 동행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때때로 해석과 이해는 모호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신앙의 길은 순종을 전제로 한 행동입니다.
문화인류학에서 경계성 연구로 잘 알려진 빅터 터너는 경계를 문턱(liminality)라 규정했습니다. 이를 역치성이라고 말하는데, 안과 밖의 중간 단계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위치로의 변화와 전환이 일어나는 과도기를 뜻합니다. 이 과도기에서 만나는 새로운 관계를 터너는 '코뮤니타스'라고 불렀는데, 이는 기존의 권력 구조, 즉 수직적 관계가 해체되고, 수평적이고 비형식적인 공동체의 형성을 뜻합니다. 변화와 성장을 위해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로서 문턱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새로운 질서와 가치로 민감하면서도 과감하게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변화에 대한 저항의 관성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허기진 몸으로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던 베드로에게 하늘이 열리는 환상이 임했습니다. 거기엔 온갖 짐승이 섞여 있었는데, 그것을 잡아 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에 베드로는 거절합니다. 이런 환상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는데, 그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 집에 도착합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이 장면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높은 곳, 지붕에서 이해되지 않는 환상을 붙들고 머물러 있습니다. 문 밖에는 그를 찾는 이방 사람들이 기다립니다. 높음과 낮음이 공존하고 머무름과 부름이 교차하는 이 지점이 바로 문턱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을 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머뭇거리는 이 상황을 전환시키는 분이 바로 성령이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베드로를 지붕에서 아래로, 환상에서 현실로 이끌어 가십니다. 해석의 자리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순종의 행동으로 밀어가십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은 해석의 자리가 아니라 순종의 자리입니다. 의미를 따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곳은 문턱일 뿐입니다. 오히려 순종을 전제로 행동할 때, 의미는 현장에서 하늘이 열리듯 깨달아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을 전제로 행동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순종이어야 합니다.
여전히 해석의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좋았다, 은혜 받았다고 할 때의 자리가 여전히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문턱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오늘도 행동의 자리로 나를 보내십니다. 더 이상 기존의 해석, 기존의 의미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지붕 위가 아니라, 높아진 그 마음에서 내려와, 순종으로 동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순종과 행동으로 결실하지 않은 의미는, 그것이 아무리 하늘이 열린 환상이었어도, 열매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의미를 딛고 나아간 행동, 순종의 행함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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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지붕에서 머물러 있던 베드로에게 성령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2. 순종을 전제로 행동으로 결실해야 할 오늘의 일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두 가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실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