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9절
베드로가 그 환상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마침 세 사람이 너를 찾노니

다 이해되지 않을 때의 신앙
20261015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음성에 대해서 성령이 개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마침 세 사람이 너를 찾노니"(19). 사도행전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설명하면서 상황을 이끌어가시는 성령을 주도권을 보여줍니다. 환상에 대해 아직 이해가 되지 않은 베드로인데, 이해보다 앞서 몸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 이해되지 않아도, 별다른 깨달음이 없어도 몸을 써야 합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은 참 깊은 사유의 힘을 보여줍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에 담긴 일을 이렇게나 헤아려 본 일이 있을까요? 죄다 따져볼 수 없는 신비가 그 안에 영글어 대추 한 알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다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해와 정확한 확신보다 답답한 모호함 중에서도 몸을 써야 하는 것이 믿음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베드로에게 어마어마한 환상이 임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뾰족한 깨달음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밖으로의 부르심이 들립니다. 깨달음이 있기도 전에 몸을 써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성령이 개입하셔서 모호한 상태의 베드로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모르면서도 가야 하고 이해되지 않는데도 움직여야 합니다. 다 이해되지 않을 때의 신앙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정확한 증거의 사인sign이 있어야 움직이려 합니다. 흔히 사사기의 기드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확실한 증거보다 불확실한 신뢰가 더 많습니다. 베드로의 환상도 그 중 하나입니다. 믿음은 확실한 사실을 확인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확실한 사랑 때문에 모호함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증거와 신호, 사인을 검증하려 하기 보다, 지금 해야 할 일, 십자가 사랑으로 지금 품어야 할 관계와 대상을 받아내야 하겠습니다. 이해보다 먼저 도착한 부름을 오늘의 삶에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다 이해되지 않을 때의 신앙은 이미 주신 답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사랑입니다. 다 이해되지 않아도 먼저 사랑하고, 다 납득할 수 없어도 해야 하는 그 일과 관계에 대해서 섬김과 희생, 주님의 시선 앞에서의 충성이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몸으로 담아내는 일상입니다. 오늘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몸으로 답하는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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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2. 이해되지 않는 답답한 일들이 있습니까? 그것에 대한 내 믿음의 결단과 고백은 무엇인지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