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8절
불러 묻되 시몬이라 하는 베드로가 여기 유숙하느냐 하니

내 이름이 불리는 곳
20261014
환상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불러 묻되 시몬이라 하는 베드로가 여기 유숙하느냐"(18). 안과 밖의 경계에서 이름을 부르는 곳은 밖이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드디어 현실에서 나타납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타자의 철학으로 알려진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관하여>에서 환대와 적대의 공존과 역설을 설명합니다. 라틴어 hospes는 주인, 혹은 찾아온 손님을 말하는데, 이 말이 적을 뜻하는 hostis와 어원이 같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어원적으로 환대라는 말이 그 반대편인 적대감과 뿌리를 같이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환대라는 것이 얼마나 조건적일 수 있는지, 낯선 이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묻고 도전합니다. 사실 우리는 은근히 나보다 나은 이들, 성공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이름이 불려야 하는 곳은 나의 도움과 섬김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경계와 문턱을 정해 놓고는 그 문턱 바깥을 구분 짓고 차별하는데 더 익숙합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일반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의 출입구를 구분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경계와 문턱을 기꺼이 넘어서도록 도전합니다. 환상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마침 고넬료의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문밖에서 베드로를 찾습니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문턱의 경계를 넘어, 바깥에서 들립니다. 무두장이의 집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베드로였는데, 오히려 그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는 그보다 더 바깥쪽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들린 말씀이 이제 실제 현실에서 문 바깥의 목소리로 전환되었습니다. 문 안에서, 경계 안에서 낯선 목소리를 듣는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우리 신앙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내 이름을 불러주길 원하는 곳과 실제로 내 이름이 불려야 하는 곳이 다릅니다. 내가 바라는 경계 안으로의 진입, 나를 부르는 경계 바깥으로의 전진. 이 두 방향 중 어느 것은 틀리고 어느 것만이 옳다 할 수는 없지만, 복음의 부르심은 종종 우리를 경계 바깥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곳에서 낮아진 십자가를 만나게 하십니다.
나의 도움과 섬김이 필요한 곳, 내 이름을 부르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 중심의 경계와 문턱을 넘어 너에게로 나아가야 할 일상의 자리를 짊어지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 구분과 경계가, 나만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도전해 보면 좋겠습니다. 은혜는 이미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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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의 이름이 불린 곳이 어디였습니까?
2. 내 이름을 부르는 곳이 사명일 수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받아내고 나아갈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을 적용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