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7절
베드로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인가 하여 마음에 의혹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앞에 서서

말씀과 현실의 간격
20261013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맥락도, 사건도 베드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인가 하여 마음에 의혹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앞에 서서"(17). 환상이 은혜로운 사건이지만 그 자체로 삶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의 뜻을 알고 삶의 변화와 이방인의 복음으로 결실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말씀과 현실의 이 간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포리아'라는 말은 길이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용어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논쟁의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려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했는데, 그 말이 '너 자신을 알라'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체념하거나 불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깨닫고 전혀 다른 삶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해서 철학자들은 아포리아를 질문과 답을 탐구하는 성찰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즉각적인 답이 가능해진 AI 시대에 아포리아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삶은 단순한 지식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답답한 내적 고민과 갈등, 그로 인한 질문과 사유를 통과하고 나서야 삶은 실제로 변화합니다. 우리 신앙의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말씀과 삶의 간격을 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은혜를 듣는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베드로에게 엄청난 환상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환상을 보고 하늘의 음성까지 들었는데도 그게 전부였습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이 마음에 의혹만 남았습니다. 내가 환상을 보았다고 더 감격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통해 우리는 말씀과 현실의 간격을 봅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이해하기까지 여러 일들을 겪어야 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하고 먼 길을 가야 합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하늘에서 임한 빛과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앞을 볼 수 없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아포리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는 컴컴한 간격을 지나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이 현실이 되기까지의 고민과 결단과 기도, 구체적인 적용(시도)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예배하고 삶이 확 바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은혜를 주셨다면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는 간격을 지나야 합니다. 바른 신앙은 반드시 질문과 고민을 통과합니다. 이것은 무지와 의심이 아니라 변화로 나아가는 필연적 과정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기까지의 간격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도 바로 그런 간격을 통과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 안에서 질문하고 현실을 따져보며 적용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 간격은 저절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성실하고 충직하게 말씀을 내 삶, 나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내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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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환상을 의혹했다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2. 나는 어떻게 말씀과 현실의 간격을 좁혀가고 있습니까?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리하고 확인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