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6절
이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 가더라

설득하시는 하나님
20261012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의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이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 가더라"(15). 환상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완고한 편견과 그것을 기다리시고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낙인에 대해서 연구한 일리노이 공대 패트릭 코리건 교수는, 서구 사회의 사회적 편견은 기술과 시대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퇴보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렇게 된 핵심에는 미디어의 편향적 보도가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대중매체가 사회적 편견을 구성하면 많은 이들이 그렇게 따라가는, 일종의 미디어 권력 형태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부정적인 이슈가 SNS로 순식간에 확산되고 종종 마녀사냥처럼 대중 몰이가 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편견인 줄도 모른 채 자기편향적 사고로 단단히 굳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세대 갈등, 빈부 격차나 젠더 갈등, 종교 갈등 등 가히 혐오와 갈등의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중심에 교회가 빠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쓰라린 마음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이 말하는 거룩은 선을 긋고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지켜내면서도 너를 품고 함께 나아가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율법이 정한 정결 규례를 평생 지켜왔을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그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 중에 본 환상에서 하나님은 속된 짐승도 먹으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이미 깨끗하게 하셨다는 말해 주셨습니다. 의미 있는 것은 이런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점입니다. 3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세 번이나 반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냥 명령하시고 기계적으로 따르게 해도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편하고 효율적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거절하는 베드로를 설득하신 것입니다. 설득이라는 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비효율적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설득하십니다. 호렙산에서도 하나님은 거절하는 모세를 여러 번 설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설득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어떤 관계에 대해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당신의 목적에 이르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필요한 것은 고집스러운 편견과 자책과 망설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도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시는 하루, 나를 설득하시는 하루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