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누가 기준인가?

목사wannabe 2026. 10. 9. 08:17

사도행전 10장 15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누가 기준인가?

20261009

 

자신은 속된 짐승을 먹을 수 없다며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하늘의 음성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15). 하나님은 이미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새롭게 선언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나의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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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서머셋 몸의 <면도날>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취직을 하지 않으려는 래리와 그것을 따지는 이사벨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냐고?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 아마도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같아 보입니다. 이런 말싸움 끝에 래리는 이사벨에게 말합니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서머셋 몸의 이 문장은 정말 유명합니다. 우리는 매우 빈번하게 나의 기준을 정당화하려고 타인을, 또는 타인의 기준을 혐오하며 가치를 깎아 내리려 합니다. 이를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이라고 불렀는데, 기준에 맞지 않아 혐오를 불러일키는 비천한 것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너를 비하함으로써 나를 정당화하는 방식의 아브젝시옹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이러면 불결하다 여기는 대상을 밖으로 밀어내고 선을 그어야 하는데, 이런 태도로 인해 갈등과 혐오, 분열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이런 가치와 태도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은 희생의 주권을 말합니다. 달라서 밀어낼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다가가 섬기고 희생해야 하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환상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에는 부정한 짐승이 섞여 있었습니다. 섞여 있다는 그 자체로 모두 부정합니다. 평생 율법 안에서 살아온 베드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지니라"(15). 깨끗하게 하셨다는 말은 완료형입니다. 이미 완성된 상태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반면 부정하다는 표현은 반복해서 진행 중인 태도나 습관을 말하는데, 여기에 부정어가 붙어, 그 습관을 끊으라, 멈추라는 명령형이 되었습니다. 즉, 기존의 습관을 끊고 하나님의 새로운 기준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핵심은 이런 과정이 반복적인 설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제가 아니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의 기준을 내려놓고 너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반복적으로 설득하면서 말입니다. 혐오와 배제, 너와 나를 차별하는 태도로는 사랑도 화평도, 무엇보다 구원도 이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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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면, 우리가 너무 쉽게 하는 판단과 정죄, 혐오는 내려놓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오늘도 나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아가는 성숙한 하루로 채워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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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하늘의 두 번째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요?​​​​​​​

2. 내가 너무 쉽게 하고 있던 판단과 정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지 성찰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