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목사wannabe 2026. 10. 8. 07:02

사도행전 10장 14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고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20261008

 

각종 짐승을 잡아 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에 베드로는 기겁을 하며 거절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 유대인이라면, 율법이 정한 정결과 부정결의 경계를 몸으로, 사회와 문화로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입니다. 그렇게 형성된  나 자신이 오히려 복음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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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마커스의 <클루지>는 진화를 기반으로 한 인간이해를 말합니다. 클루지라는 뜻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뜻인데, 이런 방식이 빈번하게 반복되면서 익숙해져 버린, 그러나 실제로는 좋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오랜 시간 진화해 오면서 습득한 사고방식이 오히려 주먹구구식의 자기합리화라고 설명합니다. 대다수 보편적인 인생은 이런 클루지로 살아가고, 반면 인류 역사를 발전시킨 위인들은 클루지를 넘어서는 최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으로 저자는 매우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좋지 않은 자기 삶의 클루지, 그러니까 좋지 않은 습관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의 성장과 성숙을 막는 가장 큰 적은 너무나 익숙한 나 자신인 셈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성격유형 검사가 유행하면서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라는 포기와 타협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치거나 변화해야 할 부분들이 오히려 당연하고 괜찮은 것으로, 나아가 누구도 간섭하지 말아야 할 존중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신앙에도 영향을 줍니다. 은혜 안에서 날마다 거듭나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이대로 사랑만 받고 위로만 누리고 싶은 피상적 신앙생활이 당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가치를 도전합니다. 기도하던 베드로에게 하늘이 열리고 큰 그릇이 내려왔습니다. 거기엔 각종 짐승이 섞여 있었는데,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잡아 먹어라. 이 말씀에 베드로는 기겁하며 거절합니다. 못합니다. 부정한 것들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클루지, 살아오면서 몸에 익혀버린 습관입니다. 성경의 용어로는 율법과 규례인데, 십자가 복음으로 율법을 넘어서 열방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막는 경계와 울타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복음은 적당히 조금 변화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완전한 새 것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기존의 가치와 행동이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로 새 삶을 삽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데, 이것을 막는 가장 큰 적이 무엇일까요? 예전의 나, 습관대로 살아온 나 자신입니다. 베드로가 이 모습을 너무 잘 보여줍니다. 십자가 사건 전에도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며 주님을 막았습니다. 열방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도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이제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거절합니다. 내가 이렇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제까지 가장 나다운 것이 나를 막는 일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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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다고 여기는 일들 중에는 나의 성장과 변화를 막는 좋지 않은 죄의 습관들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허물어 버리시려고 어떤 상황들을 허용하시고는 부딪히고 갈등하게 두시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혜는 드러나는 죄의 습성,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고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를 막는 가장 큰 적은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는 나 자신입니다. 복음을 제한하는 내가 가장 심각한 방해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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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의 반응을 보면 어떤 느낌입니까?​​​​​​

2. 복음의 변화를 막는 나의 습관, 혹은 고집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관계, 생활, 소비 등을 점검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