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

목사wannabe 2026. 10. 7. 10:38

사도행전 10장 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

20261007

 

하늘에서 내려온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는 온갖 짐승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있는 베드로에게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13). 정결과 부정결을 금쪽처럼 지켜오던 유대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이렇습니다. 자기를 헐어버리고 나서야 사랑이 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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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문장을 엮은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에는 똥물에 빠진 친구를 꺼내는 방법이 나옵니다.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하면 안 나옵니다."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너에게 나를 쏟아붓는 헌신과 희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말하는 사랑은 반대로 나를 채우는 일이 되어버려서, 내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사랑도 거래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네 사랑이 얇고 약한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더 깊습니다. 나를 내어주고 너를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 사랑은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여기엔 경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온갖 선을 긋고 경계를 판단하면서 정죄하고 있으니, 정말 십자가 사랑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 열방을 구원하시는 사랑을 빚어가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베드로가 가진 경계, 무엇보다 율법의 경계를 헐어야 했습니다. 큰 보자기에 담긴 각종 짐승을 잡아 먹어라 하신 말씀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먹는다는 건 그것이 내 속에 들어와 내가 된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부정이 내게로 들어오면 나도 부정해진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반대로, 구원받은 성도는 부정 속에 들어가 정결로 바꿔낸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경계를 세워야 하는 일이고 후자는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일입니다. 참사랑은 어느 쪽일까요?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내가 세운 기준과 경계를, 판단과 정죄를 허무는 일들이 생깁니다. 무분별하라는 게 아닙니다. 내 기준으로 너를 정죄하는 나 중심의 편견, 율법적 판단을 내려놓고 몸과 삶으로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반드시 이 과정으로 우리를 밀어넣으시고 사랑이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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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운 나의 경계, 이것을 쉬운 말로 고집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은 고집을 꺾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사랑으로 인해 내 고집, 어떤 판단과 정죄의 기준을 내려놓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말보다 몸으로 사랑이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에 기꺼이 나를 내어드리는 사랑의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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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에 들린 하늘의 음성은 어떤 뜻입니까?​​​​​

2. 경계와 고집을 내려놓아야 할 그 '일', 또는 '상황'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분별하고 섬겨야 할지 구체적인 적용을 정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