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개벽. 하늘이 열리다
20260930
베드로에게 임한 환상은 하늘이 열리고 내려온 그릇이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11)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이 놀랍습니다. 이것이 환상이어서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개벽, 말 그대로 새로운 하늘 뜻이 베드로에게 임합니다.
레비나스의 '타자성'은 이미 잘 알려진 개념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의 자기중심성을 깨닫는다고 말했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깨닫기에, 타자 없는 나는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성, 즉 내 안에 갇혀버린 편협한 나일 뿐입니다. 물론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혼자 독야청청 살아가는 것도 올바른 삶의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앙인은 타인과 나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중심성을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럴 때 필요한 필연적인 대상이 바로 타자입니다. 나라는 좁은 세계를 깨뜨리는 타자로서 너와 절대 타자로서 나에게 개입하시는 구원자를 깨닫는 것은 우리 신앙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베드로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욥바의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던 베드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우 굶주린 상태로 지붕에 올라가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부러 금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이 전하는 그의 상태는 당장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환상이 임하고 하늘에서 보자기 같은 그릇에 먹을 것이 담겨 내려옵니다. 굶주린 베드로에게 내려온 먹을 것은 모두 율법에서 명한 부정한 짐승들이었습니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입니다. 매우 독특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나타내는 신적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하게 열어버리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어떤 열심과 정성을 다해서 하늘이 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위해 하늘을 열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뜻을 내려주셨습니다. 이는 율법적 편견에 젖어 있던 베드로의 자기중심성을 깨뜨리는 복음을 뜻합니다. 나의 기준을 깨뜨리시고, 나 중심의 판단과 정죄를 깨뜨리시는 은혜의 개입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해서 필요한 것은 나의 기준을 내려놓고 하늘 뜻에 순종하려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럴 때 내가 변화되고 내가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이런 매일의 날들을 우리는 '성화', 거룩한 구원의 순례라 부릅니다.
사도행전이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하늘은 지금도 완전히 열려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 예수의 복음은 지금도 개벽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내가 나의 기준, 나의 편견을 고집한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갈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온 마음을 열고 오늘 하늘 뜻이 되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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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에게 임한 환상을 사도행전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2. 내 편견을 내려놓고 하늘 뜻으로 받아야 할 어떤 일, 또는 사건/관계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