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9절
이틑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섭리의 교차점
20260928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는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 갔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있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9). 수평의 이동과 수직의 이동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방과 유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구원의 축이 바뀌는 교차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신형철 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나의 편향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타자를 향한 최소한의 윤리"라고 썼습니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려는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말입니다. 다문화 사회, 세대 간 단절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진지하게 곱씹어야 할 문장이기도 합니다. 자칫 갈등과 분열로 치닫기 쉬운 상황이기에,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과 환대가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의 신앙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수평과 수직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 안에서의 은혜를 깊이 누려야 하고, 수평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연결하고 이어가는 열린 관계여야 합니다. 수직과 수평이 교차되는 지점이 바로 성도의 일상입니다. 이 장면을 사도행전은 고넬료와 베드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명령에 순종하여 베드로를 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보낸 이들이 욥바에 다다랐을 때, 바로 그때 베드로 역시 지붕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베드로에게도 하나님의 환상이 임할 것입니다. 이렇게 수직적 관계의 깊음을 통해 수평적 관계가 열립니다. 바로 그 섭리의 교차점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예루살렘에서 땅끝의 열방으로 복음이 넘치듯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함이 일상의 관계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하루는 그저 그런 반복이 아니라, 섭리의 교차점이 됩니다. 나를 넘어 너에게로 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온갖 편견과 비방이 쉬운 날들입니다. 마치 율법과 같은 자기만의 경계선이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서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일상이 밋밋하고 무력한 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은 나의 일상을 섭리의 교차점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수직의 은혜 안에서 수평의 열림으로 흘러가는 오늘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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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고넬료의 사람들이 욥바에 도착했을 때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 오늘 내가 은혜로 받아내고 흘러가야 할 관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