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생명을 살리는 사람

목사wannabe 2026. 9. 11. 00:30

사도행전 9장 42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생명을 살리는 사람

20260911

 

살아난 다비다에 대한 소식이 욥바 곳곳에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욥바에서도 복음의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42). 생명의 역사는 다비다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소식과 복음은 성도들을 통해 전달되고 퍼져나가, 많은 사람을 살립니다. 교회와 성도의 역할이 이것입니다.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의 저자 J. D. 그리어는 교회가 안으로 응집될 뿐만 아니라, 본래적으로는 교회 바깥으로 퍼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몸집을 키워온 교회의 속내는 자기 왕국일 뿐이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흩어지고 의도적으로 밖을 향해야 한다면서, 선교적 교회의 실제적인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가 겪는 비극 중 하나는,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현상입니다. 교회로 오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버린 전도, 교회 안에서만 에배하는 분리적인 신앙은 결국 세상 속에서 고립된 교회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교인들 역시 교회 안에서만 교인일 뿐, 교회 바깥에서는 세상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세상의 가치를 교회로 가져오는 가치의 역전, 즉 세속화을 자행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교회 스스로가 만든 위기여서, 교회 스스로만이 바꾸고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는 안으로 뭉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모이는 것은 공동체의 필연이지만, 흩어지는 것은 공동체의 숙명이며, 믿음의 사명이었습니다. 모였다면 흩어져야 했고, 부정적으로 흩어지는 게 아닌, 적극적으로 또한 의도적으로 복음의 증거를 위해, 제자 삼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해서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는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성도가 가는 곳마다 복음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뭉친 세력이 되지 않고 흩어지는 영향력과 문화가 된 것입니다. 욥바라는 도시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빌립 이후 회심한 사울, 그리고 이제는 사도 베드로의 여정을 통해 사도행전은 그들이 가는 도시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병으로 죽게 된 다비다가 베드로를 통해 살아났습니다. 이 소식이 욥바 전역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적과 결과를 보여주려는 게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능력과 생명을 살리는 권세로 쓰임 받는 성도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기적은 한 번이었지만, 주를 믿는 생명의 역사는 연달아 일어났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어지고 연결되어 지금까지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의 역할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믿음의 성도는 생명을 살리는 일로 부름을 받았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고인 물이 되어버린 교회가 아닌, 흐르는 물이 되어 낮게, 더 낮게 흘러가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누가 살아났다고 기쁨으로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이런 소식은커녕 매번 부정적인 뒷말을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의 할 말은 기쁜 생명의 소식이며, 우리의 할 일은 생생한 생명의 회복입니다. 크게 생각할 게 아닙니다. 그저 나의 하루, 우리의 일상에서, 서로를 향해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일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생명을 살리도록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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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다비다의 소식으로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가요? ​​

2. 내가 전해야 할 생명의 소식, 변화와 회복의 소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회복을 경험하고 전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