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41절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너의 잘 됨을 기뻐하기
20260910
베드로는 성도들을 불러 살아난 다비다를 만나게 합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41). 생명이 다시 살아난 현장에 베드로와 성도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너의 잘 됨에 참여하고 기뻐하는 이 모습이 교회입니다.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박진영 씨는 우리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친구의 성공에 기뻐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합니다. '나/너의 성공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관계 만족도를 예측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말하면서, 부부나 연인 관계에서도 서로의 성공에 주눅들거나 시기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는 커플이 더 행복하다고 설명합니다. 비교와 우열에 더 예민해진 현대사회는 아픔에 함께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타인의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이웃이 잘 되었을 때, 그에 비해 나 자신은 열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축하와 기쁨, 감사가 아니라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관계가 멀어지고 맙니다. 부러움이 결국 자책과 자기 비하로 변질될 때, 관계는 시들해지고 갈등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박진영 칼럼니스트는 서로의 자존감이 지지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서로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고 지지하는 모습을 가질 때, 관계가 성숙해집니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의 기준입니다. 죽은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다비다가 놀랐을까요, 아니면 살아난 것을 목격한 베드로가 놀랐을까요? 저는 그 다음 장면이 놀랍습니다. 베드로는 누워있는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킵니다. '달리다 쿰'과의 차이점이 여기 입니다. '다비다 쿰'에서는 베드로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일으킵니다. 그녀의 일어남에 베드로가 개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불러 이 생명의 기적을 함께 누립니다. 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며, 너의 회복이 나의 기적이 되고, 우리의 환희가 되는 장면입니다. 물론 사도행전이 정서적 표현을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이 한 구절에 담긴 기쁨과 사랑과 감사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다비다를 살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 옛날 2천 년 전의 예수님이 지금 나의 예수님입니다. 우리 서로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일으키는 일들이, 우리 서로에게 감사와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너의 잘 됨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너를 이끄신 하나님이 또한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어 일으킬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거룩과 영광이 회복될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삶이 나타날 것입니다.
--
말씀질문
1. 살아난 다비다에게 베드로가 한 일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2. 오늘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야 할 내 곁의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