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20260909
죽은 다비다를 앞에 두고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비다를 살려냅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40). 누가-행전 저자의 의도이긴 하겠지만, 베드로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이 거의 비슷합니다. 어떤 상황 앞에서 잘 모를 때 믿음의 성도가 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이었던 최종원 교수의 인생 명언으로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 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보고 들었을 이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습니다. 아마도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살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나은 것인지 고민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 최대 고민이 "오늘 뭐 먹지?"라는 말을 할 정도로 우리는 선택으로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선택일수록 더 고민하고 망설이게 마련입니다. 신앙의 삶이라고 해서 딱히 나은 것은 아닙니다. 매번 천사가 나타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인간 존재를 시키는 대로 하는 비인격으로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믿음의 성도들 역시 매번 선택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렇다면 세상과 다른 우리의 고민과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요? 죽은 다비다를 살려낸 베드로의 모습이 모호한 삶에 환한 등불 같습니다. 다비다가 죽었다는 말에 베드로는 지체 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라고 별다른 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겁니다. 장례를 해야 할까,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겉옷, 속옷을 보여주며 아파하는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람들을 다락방에서 다 내보내고 죽은 다비다를 보며 베드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막막한 그 상황에서 베드로는 놀랍게도, 그러나 당연하게도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죽은 이를 향해 말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이 모든 과정과 설명은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달리다굼의 예수님과 다비다굼의 베드로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말도 알파벳 한 글자만 빼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성경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길이고 등불입니다. 선택에 막막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럴 때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라하면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상황 앞에서 선택을 하기 전에 먼저 구별된 기도로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행동하고 선택하며 성숙하게 책임지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베드로도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 확실했기에 그의 믿음과 행동은 당연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은혜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망설이는 일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베드로처럼 하면 됩니다. 혹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은혜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고민하되,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먼저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행동하되 믿음으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믿음과 삶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정말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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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죽음 앞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2.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할, 망설여지는 그 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