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9절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나를 증언하는 사람이 있는가
20260907
도르가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고 욥바로 내려갑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인거늘"(39). 이 장면의 특징은 옷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도르가가 지어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는 정말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의 2행을 좋아합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괜찮은 관계로 지낼 뿐, 깊은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예의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정말 신뢰하는 벗, 죽음을 불사하는 도제 관계 같은 일화는 일종의 영웅담처럼 전해집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가를 보면, 그의 성품과 됨됨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이 이룬 성취보다 나의 관계가 더 정확하게 나를 설명하는 지도 모릅니다. 사도행전의 도르가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알게 된 후 도르가는 여제자라고 불릴 정도로 신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질병으로 그녀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 도르가와 함께 했던 이들은 근처에 온 베드로를 불렀습니다. 소식을 들은 베드로 역시 지체하지 않고 욥바로 달려왔는데, 베드로는 어떤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스스로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하자마자, 도르가와 함께했던 이들은 그녀가 지어준 겉옷과 속옷을 보여줍니다. 이때 보여준다는 말이 중간태인 것을 감안할 때, 과부들은 아마도 입고 있던 옷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비록 그녀는 숨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도르가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 사랑을 입고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입고 있는 옷을 보여주며 도르가를 애도하는 그 현장이 머릿속에 그려지십니까?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면, 나는 어떤 말들로 표현될까요? 확실한 것은 내가 섬겼던 일들, 작고 사소하지만 진심이었던 태도와 관계로 설명될 것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과 관계로 나를 증언할 것입니다. 해서 믿음의 성도는 날마다 은혜 안에서의 우리, 신뢰 안에서의 너와 나로 살아야 합니다. 평판에 신경쓰라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나라는 인격을 겪으면서 십자가 사랑을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으로 증언되는 삶이 복입니다.
도르가의 사랑은 십자가의 주님을 향한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다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처럼 그녀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섬김과 사랑이었고, 그렇게 기억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어떤 삶으로 남겨질까요? 누군가 나를 설명한다면, 나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요? 오늘 나의 태도와 행동이 그 답일 수 있습니다. 해서 오늘 사랑이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의 삶은 이 하나면 충분합니다. 사랑이었다고, 예수님을 닮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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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도착한 베드로에게 과부들은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2. 나를 설명하는 말들이 신앙적으로 어떠하기를 바랍니까? 그 표현들을 적어보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적용을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