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6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나에게 주신 이
20260902
룻다에 이어 욥바로 간 베드로는 그곳에서 죽음을 마주합니다. 여제자 다비다의 죽음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그녀의 삶을 소개합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36). 그녀는 제자였습니다. 선행과 구제로 설명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족할 게 없었지만 예수의 제자로 살았던 다비다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윌리엄 윌리몬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가>는 풍요가 당연해진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탁월한 저작입니다. 그의 책들이 워낙에 수작이어서 어느 것 하나를 최고로 선택하기 어렵지만,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필요성을 나누어야 한다면, 단연코 이 책입니다.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에 교회는 복음과 함께 배부름을 제공했다면, 오늘날 같이 풍요하고 넘쳐나는 자본주의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중산층으로 조금은 넉넉한 경제적 풍요를 살아가면서 범법하지 않는 올바른 현대인에게는 복음을 설명하는 이전의 방법, 즉 죽음과 불지옥 같은 말들은 통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불안을 조장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바르게 가르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 더 좋은 관계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나를 통해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될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약자와 병자를 섬기신 예수님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닮아가야 하는 신앙적 책임을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죄로 오염된 가치관, 생활 등이 드러나고 고백되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순종을 결실합니다. 부족한 게 없다고 여겼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신앙 관계의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욥바의 다비다가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1세기 로마 시대에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런 가치와 문화이지만 사도행전은 다비다의 이름을 설명하며 여제자로 소개합니다. 그녀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매우 중요한 지도력이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습니다. 아마도 경제적 여건이 상류층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도 갖춘 삶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상에서 다비다는 부족한 게 없는 삶으로 보입니다. 남편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과부였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만, 사도행전의 정보로만 볼 때 다비다는 자기 집에서 가정교회를 했을 정도로 넉넉한 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했음에도 다비다는 예수의 복음을 붙잡았습니다. 여제자라는 독특한 수식을 해야 할 정도로 신앙적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십자가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더욱 풍성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작은 자를 돌보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나를 위한 일이 무시될 수는 없습니다만, 믿음의 성도는 나만을 위해 사는 것에서 너를 품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것은 복음과 사랑으로 너를 살리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면,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 옳습니다. 주신 것을 바르게 사용할 때, 그것을 통해 생명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 기쁨으로 나와 너를 초청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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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다비다에 대한 설명은 어떠한가요?
2. 내게 주신 것으로 너를 섬겨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