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5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생명이 생명을 부른다
20260901
8년 간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애니아가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자, 그 지역에 복음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 오니라"(35). 한 사람의 변화가 마을과 지역의 변화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이를 돌아온다고 표현했습니다. 변화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불러온 것처럼 말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친구 관계를 비유해서 종종 사용하는데, 가까이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누구나 바라고 원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힘쓰는 일은 적어 보입니다. 세상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내 인생을 바꿔줄 인연을 만나야 한다며 그런 모임이나 관계를 우선하는데, 성경은 좀 다르게 말합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복음이 나를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때 좋다는 기준은 세속적 가치가 아니라, 거듭난 복음의 삶을 뜻합니다.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삶을 은혜 안에서 살아갈 때,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예수를 읽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은 나에게로 와서 너에게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구원의 경륜이 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와 공동체를 찾아 룻다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만나는데, 복음의 능력, 예수의 이름으로 애니아가 나음을 얻었고, 그를 통해 룻다와 사론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베드로, 복음으로 치유된 애니아. 그들을 보고 주께로 돌아온 많은 사람들. 이 흐름과 모습은 생명이 생명을 부르고 함께 생명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게로 부어진 복음과 사랑으로 우리도 낮은 곳으로, 이웃과 내 곁의 사람들에게로 찾아가 흐를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해 예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관건은 정말 그렇게 살겠는가에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부르고, 복음은 생명으로 흘러가게 마련인데, 나는 여전히 고여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내가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고 있거나, 내가 어쩌면 생명이 아니거나 입니다. 둘 다 우리에게 주신 길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생명이 생명을 부릅니다. 생명이 낮은 곳으로 흘러 생명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이 방식으로만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생명으로 흐르고 생명으로 연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죄로 죽은 나를 생명이 되게 하신 예수의 복음은 나를 통해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게 하십니다. 반드시 누군가를 만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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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애니아를 통해 나타난 일이 무엇인가요?
2. 오늘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 중에 생명으로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