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3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고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260828
룻다로 간 베드로가 만난 사람은 8년 째 중풍병을 앓고 있는 병자였습니다.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33). 8년이라는 시간과 침상이라는 장소는 애니아의 고립된 삶을 보여줍니다. 굳어버리고 고립된 삶의 경계를 뚫고 찾아가 만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교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적인 사랑을 깨닫습니다.
고독사가 점점 더 흔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독거노인 같은 고연령층에서 나타나는 소외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청년층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보편적 현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도 아는 목사님께서 고립 청년의 고독사로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최초 사망을 발견한 분이 목사님이셔서 부검이 완료될 때까지 여러 번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는데요, 경찰과 수사관들은 너무 매정하게 사무적으로 일처리를 했고, 주변에서는 마치 재수 없는 일이 생긴 것처럼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어떠했을까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쉬쉬하는 게 전부였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교회는 고립과 죽음, 우울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 경계에 다가서는 일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자살, 고독사, 고립과 소외는 우리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합니다.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낯설다면 그만큼 우리가 그 경계로는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소외당하는 이들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정작 나와는 가장 먼 일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경은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아픈 자, 작은 자를 찾아가 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찾아가는 것, 이것이 복음으로 사는 기본입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핍박으로 흩어진 공동체를 찾아 나섭니다. 룻다로 가고 욥바로 갈 것입니다. 이 여정에 중요한 만남이 몇 번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애니아였습니다. 그는 8년의 중풍병으로 침상에서 나올 수 없었던 고립된 인생입니다. 누군가 찾아가지 않는다면 누구도 만날 수 없습니다. 해서 우리는 찾아가야만 합니다.
나에게 찾아온 사랑이 있어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움직일 수밖에 없어서 너를 찾고 찾아가고 찾아냅니다. 나를 향한 사랑이 그러하듯, 나 또한 찾아가고 찾아내는 신앙이어야 하겠습니다. 고립을 적당히 지나치지 않고 기꺼이 찾아가고 품고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우리라면 좋겠습니다. 그 걸음마다 복되게 하시고 든든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
말씀질문
1. 베드로가 찾아간 애니아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2. 내가 세심하게 품어야 할 내 주변의 정서적 고립에는 누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