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사람이 많아지면 부흥인가요

목사wannabe 2026. 8. 26. 07:02

사도행전 9장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람이 많아지면 부흥인가요?

20260826

 

사울이 다소로 내려가고 사울의 회심 사건은 일단락합니다. 그 후에도 핍박은 여전했겠지만,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31). 숫자가 많아졌다는 것에 마음이 쏠리긴 합니다만, 왜 숫자가 증가했는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부흥이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실력을 평가하는 것, 숫자를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비단 한국 사회 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사실 숫자보다 더 정확한 기준이 없기도 합니다. 숫자는 비교가 쉽고 우열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숫자가 위험합니다. 숫자로 표현된 것들의 이면에 감춰진 결정적인 오류가, 바로 그 숫자로 인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서 숫자는 진실을 감추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며, 나아가 속이기에도 너무 좋은 도구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도 이 숫자에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이기에 숫자의 영향이 있는 것과 숫자에 메여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숫자에 메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숫자가 크고, 그러니까 교인이 많고 헌금이 많으면 부흥이라고 하는 말부터가 그렇습니다. 물론 성경이 성령의 결과를 숫자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있기에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여기엔 부흥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서들이 붙어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의 회심과 그로인한 결말이 보여주는 장면도 그 중 하나입니다. 회심한 사울은 도전적입니다. 그는 거침없이 회당을 찾아가고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예수쟁이들처럼, 이제는 그가 예수의 복음을 전합니다. 핍박에 거침이 없었던 것처럼 사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결국 그가 가는 곳마다 핍박이 거세지고 죽음의 위협이 일어납니다. 결국 사도들과 신앙공동체는 사울을 다소로 내려보냈는데, 이런 맥락의 결과를 사도행전은 '평안하다, 든든하다, 수가 더 많아졌다'고 표현합니다. 들쑤시고 다니던 사울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일까요? 핍박이 덜해져서 수가 많아졌다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이 소단락 결말은 핍박 속에서도 성령의 일하심에 순종한 신앙공동체가 어떠했는지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수가 많아졌다는 표현인데요, 여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그 앞의 설명들입니다. 숫자가 늘어난 이유로 사도행전은 주를 경외함, 성령의 위로로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숫자가 많아진 게 아니라, 성도들의 경외함, 성령의 위로가 공동체 안에 나타났고 그 결과, 수가 많아졌다고 설명합니다. 요즘처럼 간증집회, 전도대회, 어떤 이벤트로 교인을 늘린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주를 경외하는 신앙, 서로를 깊이 위로하게 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에 순종하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들, 세상과 다르지 않고 교회가 갈등으로 아파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교회의 목적이 숫자의 증가에 있지 않습니다. 부흥은 숫자가 아닙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숫자로 설명해야 하는 어떤 기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숫자가 진실이 되기 위해서 먼저, 순전한 거룩과 경외가 삶에서 선행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대가 없이 위로하고 품는 일들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숫자는 강력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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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도행전이 표현하는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가요?

2. 내가 일상에서 책임져야 할 경외함과 위로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