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호랑이 굴에 들어가기

목사wannabe 2026. 8. 21. 09:20

사도행전 9장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기

20260821

 

바나바의 연결로 사도들과 연결된 사울은 예루살렘을 오갑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28). 박해가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떠나야 했던 예루살렘으로 사울은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이 복음을 알아야 할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핵심을 거머쥐는 일은 위험이 따르겠지만, 주변부에 머물러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흥행하는 영화 <오딧세이>는 귀향을 주제로 한 험난한 삶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온갖 유혹과 의심, 불안을 통과하면서 오디세우스는 10년을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왕의 자격을 되찾아야 하고 자신 본래의 삶으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오디세우스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모함에 도전합니다. 가만히 머물러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는 포세이돈의 갖은 방해를 뚫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며 귀향합니다. 사울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도 비슷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장소는 사울에게 있어서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몸 담았던 유대교의 본체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은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기에 거기에서 복음을 확증해야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 예루살렘은 사도들이 끝까지 남아 있던 신앙공동체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울 자신이 핍박했던 그곳에서 그는 예수의 복음으로 공동체를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든, 사울에게 예루살렘은 호랑이 굴입니다.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자기를 믿어줄 지 확신할 수 없는 불안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를 통해서 신앙공동체의 문이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순간을 사울이 사도들과 교제하며 예루살렘에 출입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사울의 사도적 전승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사울은 불안해 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과감하게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길을 찾습니다. 호랑이 굴 같아도, 사명이 분명하다면 기꺼이 감당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전도자의 일생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살아내야 할 일상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이거저거 따져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명이라면, 예루살렘에 간 사울처럼, 호랑이 굴에 도전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세상은 기회가 온다고 말하지만, 성도는 이미 주신 은혜 안에서 기회를 만들어 가는 존재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망설이는 불안함을 기도한다고 포장하지 말고, 기도했다면 시도하고 실천하는 믿음이어야 하겠습니다.

호랑이 굴이라고 해서 대단한 무엇이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의 선택과 관계들도 사명 안에서 받아내야 할 것들이라면, 호랑이 굴과 다르지 않습니다. 초점은 호랑이 굴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미 완성하신 복음 안에서 내가 믿음의 삶, 사랑의 헌신, 사명의 올곧은 전진을 살아내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임은 덜어내고 행동하는 믿음이기를 빕니다. 오늘이 호랑이 굴을 향한 한 걸음 전진이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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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울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인가요? 

2. 오늘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호랑이 굴, 그러니까 일상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인 적용을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