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연결점으로 살기
20260820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거절당하던 사울에게 든든한 조력자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주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27) 자칫 고립될 수 있었던 사울을 바나바가 사도들과 연결해 줍니다. 이런 연결점이 성도의 역할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초연결 시대를 살아갑니다. 사람과 사물, 공간,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서 촘촘하게 연결되어 서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초연결(Hyper-Connected)이라고 말합니다. 손 안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도 우리는 전세계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초연결에 반해 현대인들은 분리불안을 겪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누구와도 연결할 수 있지만, 반대로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에 시달리면서 피로감을 느끼거나, 알람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초연결과는 반대로 갈등을 겪거나 소외 되기도 하는 등 관계의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여서 어떤 연결점(HUB)이 되는 존재, 또는 그런 플랫폼이 인기를 얻기도 합니다. 여기에 성도의 거룩한 사명과 역할이 있습니다. 성도는 개인과 공동체의 연결점이어야 하고, 하나님과 죄인의 연결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립된 사울을 연결했던 바나바처럼 말입니다. 바나바를 말하지 않고 사울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왔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는 사울을 사도들에게 연결합니다. 그냥 데려다 준 게 아니라, 사울이 경험한 복음과 그 후의 달라진 그의 삶을 보증합니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사울을 감싸줍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이전에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바나바를 통해서 사울은 나아갈 길을 얻고 복음전도자로 세워집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연결이 필요하고, 우리가 이런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초연결 시대라지만 오히려 소외되고 고립되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혼자 작은 화면만을 보면서 열등감에 눌리거나, 게임과 영상, 음란물, 도박에 중독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럴 때 성도는 '좋은 사람, 옳은 사람'으로써 서로를 연결하고 관계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멀리, 크게 볼 것도 없습니다. 내 주변과 이웃과 함께 하는 동료들 속에서 거룩한 연결점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섬김과 연결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면, 나도 누군가의 연결점이 되어, 우리 서로가 곳곳에서 감사를 결실하고 생명을 건져가면 좋겠습니다. 거기 그 누군가가 사울이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함께 꿈꿔 볼 일입니다.
연결점으로 산다는 건 피곤하고 귀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복음은 나를 넘어 너에게로, 반드시 너에게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이 바로 연결점입니다. 오늘도 나만 살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너와 너를 연결하고 나아가 너와 너를 연결해 주는 복 된 삶이길 소망합니다. 그런 날들, 그런 관계가 쌓이고 깊어지면서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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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바나바는 어떻게 사울을 연결해 주었습니까?
2. 내가 연결해 주어야 할 주변의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어떻게 사랑으로 섬기며 연결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