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6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증명하려 하지 마세요
20260819
겨우 다메섹을 빠져나온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26). 설레는 마음으로 사도들을 찾아갔을 사울,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기를 증명해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앙과 관계는 자기 증명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복음의 삶은 증명이 아니라 일관된 진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 초기에, 작지만 소신있게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을 만나 교제하다가 해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 목회는 자기 증명이 아니에요. 증명하려 하지 마시고 그저 복음으로 살아내세요." 맨 땅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저에게 그 말씀은 든든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증명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면 결국 목회는 자아실현, 딱 그 정도에 머물고 맙니다. 생명을 건지고 낳고 보내는 교회의 사명은 뒷전이 되거나 포장지가 될 뿐입니다. 현대 사회는 자기 증명 시대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마인드마이너라고 소개하는 송길영 대표는 자신의 책 시대예보 시리즈에서 반복해 강조합니다. 자기 전문성이 증명된 사람만이 외부와 연결되는 시대이기에, 자신의 영역을 깊이 파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대적 가치와 문화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교회도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자기를 증명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증명은 복음으로 사는 삶에 나타나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증명하기 이전에, 진심으로 복음의 삶을 살아내는 고백과 결단, 그리고 사랑의 삶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구원받은 자의 변화된 삶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다메섹에서의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울을 제자들이 꺼려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소식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메섹의 3년 사역이 이미 예루살렘에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사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반복적으로 다가섰고, 그들은 반복적으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 사울은 핍박에 가장 앞장 서던 '죄인 중의 괴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자기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리를 두는 제자들로 인해 좌절했다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자기가 살아야 할 사명의 삶을 묵묵히 살아냈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SNS에는 온통 자기 증명, 자아 충만의 실현이 가득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다들 아우성입니다. 좋아요와 하트, 팔로우에 목숨을 겁니다. 세상이 이래서 교회도 이 판에 선수로 뛰어들었습니다. 필요한 일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이는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십자가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삶은 없고 온통 외적 증명으로 포장만 하려 할 때 신앙은 변질되고 망가집니다. 오늘날 교회의 추락처럼 말입니다.
증명하기보다, 묵묵히 낮은 자리의 십자가가 되기에 힘쓰면 좋겠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온 몸으로, 온통 십자가 사랑에 붙들린 일상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증명하는 것을 넘어, 기꺼이 사랑하는 소소한 일상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증명하고 인정받는 게 아니라, 복음의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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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예루살렘에서 사울이 겪은 일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것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신앙 안에서 어떻게 삶으로 살아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