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절벽도 길이 되게 하신

목사wannabe 2026. 8. 18. 07:38

사도행전 9장 25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

 

절벽도 길이 되게 하신다

20260818

 

다메섹을 관리하는 총독의 체포 명령과 유대교의 집요한 핍박에 죽을 위험까지 겪게 된 사울이 광주리에 달려 피신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셩벽에 달아 내리니"(25). 삼엄한 경계와 경비에 사방이 막혀 빠져나갈 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벽에 내몰린 것 같은 그때, 하나님은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피신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절벽도 길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방이 막힌 막다른 곳에 이르면 도저히 갈 곳이 없어 막막해집니다. 영화에서처럼 막다른 길에서 비밀스러운 통로가 나타나거나, 담을 뛰어넘는 재능이 갑자기 뿅 하고 생기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막다른 길은 어둠, 그 자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막다른 곳에서 하늘 길이 열리는 일들을 종종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는 지붕이 길이 된 경우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침상 채 매고 온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틈이 보이지 않자, 지붕을 뜯고 침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고 친구의 중풍병은 나음을 얻었습니다. 지붕이 길이 된 경우입니다. 모세는 강물이 길이 되었습니다. 여리고를 정탐했던 정탐꾼들에게는 천장의 대들보가 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울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다메섹의 관리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울이 매우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유대교와 어떤 결탁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사울은 다메섹의 정치권력에 의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유대교의 노골적인 핍박과 살해 위협까지 더해져서 정말 막다른 길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더이상 피할 수 없이 막막했던 사울에게 전혀 뜻밖의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광주리를 타고 성벽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사도행전은 사울의 제자들이 있었다고 언급하는데, 아마도 다메섹에 머물렀던 3년 동안 복음의 결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을 돕는 손길들이 있어, 유대인의 계략도, 피할 길도 내주었습니다. 비록 광주리에 매달려 성벽을 내려가는 일은 초라하고 불쌍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가 살 길이었습니다. 절벽도 길이 되게 하시는 은혜로 사울은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도의 삶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때로는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기대한 기적과 신비한 능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작 이렇게 밖에 안 되느냐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 길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들의 풀도, 하늘의 새도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대댠해 보이지는 않아도 하나님은 동행하시면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믿음의 성도에게는 언제나 순종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작은 틈 같아 보여도 그것이 숨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되게 하시는 섭리와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당장은 멋져 보이지 않아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내어드리고 순종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사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멋지고 화려한 큰 길이 아니라, 절벽에 내몰려도 살게 하시는 하늘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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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막다른 상황에서 사울에게 주신 살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2. 절벽도 길이 되게 하시는 은혜가 어떻게 느껴지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