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4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피할 길을 주시는 은혜
20260817
사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계획이 사울에게 알려졌습니다.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24). 죽음의 위협이 사울을 둘러쌉니다. 그래도 주님은 피할 길을 주십니다. 뜻하신 바를 이루시기까지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에 대한 의문들 중 하나는, 하나님이 선한 신이라면 왜 고난을 주시는가, 입니다. 자기를 믿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더 지켜주는 게 옳지 않느냐는 이 질문을 신학에서는 신정론이라 말합니다. 신정론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주제입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어렵고 난해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해서 오랜 신학과 신앙의 역사, 교회의 역사 속에서 신정론은 늘 설명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하늘의 뜻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정작 내게 고난이 생기고 사건이 터지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인정하기도, 수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약속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성령의 은혜로 동행하시고, 성도가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메섹에서의 3년 동안 사울이 그냥 쉬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당으로 자주 찾아갔고 그곳의 유대인들에게 끈질기게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다메섹의 관리들도, 유대인들도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겹겹이 죽음의 위협에 갇혀버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한 뜻으로 살아가려는데 왜 이런 공격과 핍박이 생기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이런 일을 왜 막아주지 않고, 이런 상황을 그냥 두시는 걸까요? 이런 질문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뾰족한 답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믿음의 성도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함께하신다는 약속 뿐입니다. 사도행전은 사울을 죽인다는 정보가 사울에게 전해졌다고 말해줍니다. 성문에 경비가 삼엄해졌다는 정보도 사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정보 덕분에 사울은 위협을 피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설명이지만 이런 것조차도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도, 믿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난을 만나고 원하지 않는 사건을 겪기도 하겠지만,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셔서 피할 길을, 견뎌야 할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여도 두렵지 않다고 했던 시인의 노래가 우리의 고백이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이 왜 생기는지 정확히 답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고난에도 함께하십니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뒹굴면서도 견디고 버틴 후에는 피할 길도, 견딜 힘도 나에게서가 아니라, 동행하시는 은혜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해서 오늘도 하루를 건딜 힘과 지혜를 구합니다. 피할 길로 인도하실 때 순종하는 내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해야 할 것은 이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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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울에게 전달된 소식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2. 내가 더 견디고 지혜롭게 피할 수 있도록 구해야 할 상황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