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2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첫 사역의 열정
20260812
기회가 될 때마다 회당을 찾아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울의 열정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보여줍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니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22). 성령의 권능은 사울의 변화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적당히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사울 안에서 성령의 은혜가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열정을 어떤 분위기나 기세로 여기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열정은 뜨거움, 열렬한 환호나 에너지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열정의 분위기는 그럴 수 있어도 열정의 실제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꾸준함, 주변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함 같은 태도로 나타납니다. 열정이 있다면서 쉽게 멈추고 끊어지는 일이 많은 이유는 열정을 분위기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열정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불 꺼진 무대 뒤, 어둠과 공허함을 견뎌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진짜 열정은 조명이 없는 현실에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끈기와 가장 비슷합니다. 사울은 본래 열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쟁이들에게서 유대교를 지키는 소극적인 방어가 아니라, 그들을 추격하고 체포하여 멸절시키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수호하고 선민의 특권을 누리는 길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열정, 그러니까 공로주의로 가득한 자기 의로움은 복음의 빛 앞에 무참히 꺾이고 말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3일은, 자기 의로움이 죽는 3일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열정이 진리 안에서 옳았다면, 이렇게 꺾이고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전의 열정은 사실 자기 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회심한 사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죄의 자아는 죽고 거듭난 은혜를 누렸습니다. 해서 그의 복음 증거는 이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과 권세도 멈추지 못하는 진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열정을 사울은 거듭난 후 다메섹에서으 첫 사역에서부터 보여줍니다. 그는 회당을 찾아가 예수를 전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그동안의 지식과 성경의 지혜를 다해, 힘을 다해 사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사울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말 그대로 그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사울은 멈추지 않습니다. 더 힘을 얻어, 더 힘을 다해, 더 자신을 내어드려서 예수의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열정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다시피 사울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의 복음 증언은 멈추지 않고 성경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된 열정이 무엇인지를, 성령 안에서 은혜를 입은 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처음의 은혜, 처음의 감사를 기억하십니까? 그때와 지금은 어떠한가요? 사울에게 임하신 성령이 지금 나에게 임한 성령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우리는 처음의 헌신을 다 잊어버리고 엉거주춤하게 이것저것 따지고 있는 걸까요? 처음의 열정, 그때의 고백과 결단을 오늘에도 이어가는 열정이라면 좋겠습니다. 은혜 안에서 넉넉했던 마음과 태도와 순종을 오늘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신데, 내 열정이 변했다면 그건 결국 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은혜를 고백하고, 더욱 깊어지는 참된 믿음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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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울의 모습을 성경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2. 혹시 멈춰버린 하나님과의 약속이나 결단이 있습니까?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시 결단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