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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넘치는 권능

목사wannabe 2026. 8. 10. 08:06

사도행전 9장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흘러넘치는 권능

20260810

 

눈을 뜨고 다시 보게 된 사울은 회당으로 가 예수를 전합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20). 그의 마음에 복음이 흘러넘칩니다. 그의 삶에 은혜가 흘러넘칩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는 기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과 성령의 권능입니다.

언젠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성경을 몇 권이나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바르게 깨닫기만 하면, 암송한 그 말씀들이 저절로 풀어지고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기독교의 예배에는 갑자기 깨달아진 그 기쁨과 놀라움으로 누구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누구나 간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예배 같지만, 생생한 감동과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정형화된 교회의 현실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비하고 초월적인 뭔가를 원하기는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복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 흔합니다. 이는 성경이 전하는 성령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려주지 않은 교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과 성령의 권능은 신비한 치유와 기적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한 사람의 인격과 삶으로 나타나는 복음의 증인된 삶입니다. 해서 사도행전은 기적 이전에 먼저 복음의 증언을 담아냅니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어도 흘러넘치는 담대한 증언을 통해 복음이 드러납니다. 세상의 잘난 것, 자랑이 아닌 은혜를 깨달은 죄인의 감동과 감사를 통해 복음이 나타납니다. 사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환한 빛으로 임재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가 자랑했던 율법, 가문, 바리새 전통 같은 자랑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는 회당으로 가 예수의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담대히 전합니다. 그가 사람을 죽여서라도 막고 없애려 했던 그 말을 사울 자신이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 그렇게 한 게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그가 지속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 꾸준히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증언했다고 말합니다. 조심스럽지 않았을까요? 두려움은 없었을까요? 왜 안 그랬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를 통해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초월적 능력이 발휘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복음을 전합니다. 이미 경험한 은혜가 내 안에 가득해서,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울의 이 모습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능력 있는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에 붙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자신의 것으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를 전하는 담대한 마음과 삶입니다. 이 복음이 너무 커서, 우리에게 다른 것들은 부수적입니다. 이미 은혜가 충분합니다. 그러니 해야 할 것은 복음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오늘도 담대히 사랑을 행하고 예수를 전하십시오. 나의 태도가 예수님의 것이며, 나의 말투와 선택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내 안에서 이미 그렇게 이끄시는 성령에 순종하여, 세상과 다른 이 믿음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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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눈을 뜬 사울이 처음으로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나에게도 같은 성령을 주셨다면, 오늘 내가 담대히 복음을 드러내야 할 일에는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