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한 사람을 세우는 일

목사wannabe 2026. 8. 7. 07:29

사도행전 9장 19절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 있을새

 

 

한 사람을 세우는 일

20260807

 

다시 보게 된 사울은 다시 태어난 사울입니다. 그를 주변의 사람들이 먹이고 동행합니다.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 있을새"(19). 갓난 아기를 돌보듯, 사울의 주변에 그를 돌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의 시작이 처음부터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돌봄 속에서, 애틋한 섬김 속에서 빚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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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된 영화 <동막골>의 명대사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북한군 장교에게 말을 이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잘 맥이는 거이지 뭐." 화를 한 번 내지도 않는 할아버지 이장님의 돌봄에 동막골은 행복하고 풍성했습니다. 거기엔 전쟁도, 남북도 구분이 없습니다. 그저 함께 살고 함께 웃으며 서로를 먹이는 일이 일상이어서, 가진 것 없어도 풍성하고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치와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 시대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고 더 많이 누려야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미니멀을 강조하더라도 그 전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 여건이지, 정말 최소한의 기반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도 나는 아파트에 살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너는 무소유여도 나는 풀소유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는 행복을 추구한다면서도 정작 행복하지는 않다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돌아보는, 서로를 채워주는 신뢰의 관계가 행복의 핵심 요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합니다. 소유와 성취, 재산과 먹고 마시는 것을 강조하는 세속적 가치에 대해서, 성경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전적인 은혜, 이 은혜로 거듭난 이들의 사랑의 관계를 내세웁니다. 이 관계를 우리는 교회라 부릅니다. 해서 교회는 소유나 숫자를 향할 때 변질되고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랑의 수고와 돌봄, 그리고 서로의 곁을 지키는 동행입니다. 그 안에 예배와 말씀, 기도와 찬양이 날마다 있어,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것, 세상과 다른 이 관계의 삶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사울이 거듭났습니다. 사울의 눈이 다시 떠지고 그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위대한 전도자의 왕성한 활동이 나타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난 그를 세심하게 돌보며 먹이는 교회 됨이 우선이었습니다. 사울을 위해 먹이고 돌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나오지 않아도 그의 연약한 몸과 마음을 다정하게 감싸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이런 사랑의 수고와 돌봄, 동행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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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신앙은 이게 전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 따로, 교회 따로 분리되는 건 우리 신앙과는 다릅니다. 어디서든 교회 됨으로, 복음의 가치로 살아갈 때 교회의 결과로써 사랑과 구원과 연합이, 세상과 다른 거룩한 성령의 일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니 오늘도 교회로 살아내십시오. 주변의 사람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십시오. 나를 통해 이루실 교회의 영광을, 십자가의 마음으로 담아내십시오.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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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다시 눈을 뜬 사울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 내가 교회 됨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주변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섬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