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부르심과 부리심

목사wannabe 2026. 8. 3. 07:55

사도행전 9장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부르심과 부리심

20260803

 

주님은 아나니를 사울에게 보내시면서 그 이유를 계시하셨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뼛속까지 정통 유대인인 사울을 이제는 이방인을 위해 사용하시겠다는 주님의 주권에 아나니아 역시 순종합니다. 부르신 분이 그 뜻에 맞게 사용하신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과 무속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자기가 믿는 신을 향한 태도에 있습니다. 무속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을 어르고 달래야 합니다. 흡사 조건과 거래 같은 일들을 해야 문제를 해결 받거나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의 생명으로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은혜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예수의 삶을 이어가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순종이 아니라 무속 같아졌다는 데 있습니다. 필요와 문제해결을 구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유독 그 정도에만 머물고 있다면 이는 바른 신잉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수용하고 순종할 때, 우리 신앙은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과 다른 길이 됩니다. 사울을 부르시는 주님의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다메섹으로 기독교인을 체포하러 가던 사울에게 주님이 환한 빛과 음성으로 임재하셨습니다. 그 빛 속에서 사울은 눈이 멀고 말았는데,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위해 안수하러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이 계시와 사울이라는 인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사울은 선민사상을 목숨처럼 여기는 골수 유대인,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자의 주권이며 의지였습니다. 해서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순종하여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아나니아도 순종하여 사울에게 갈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일상도 이와 같습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나를 부리십니다(사용하십니다). 관건은 조건과 상황이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순종하여 사울이 눈을 뜹니다. 눈 뜬 사울이 순종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나를 사용하십니다. 복음을 목적으로 나를 보내시고 누군가를 마주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나는 복음에 합당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가정, 학교, 일터, 교회 어느 것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만이 답이 됩니다. 아나니아의 순종이 사울이 낳았습니다. 사울의 순종이 열방이 구원받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은 순종하는 다른 이를 세우실 것입니다. 부르심과 부리심이 오직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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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울을 향한 주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2. 순종을 전제로, 오늘 내가 받아내야 할 일상의 관계, 또는 책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