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14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사실을 넘어선 결단
20260731
아나니아는 이미 사울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았고 무엇보다 다메섹으로 향하는 그의 목적이 무언지를 전해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14). 틀림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팩트였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종종 사실을 넘어설 결단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바로 그 결단에서부터 권세로 나타납니다.
팩트 체크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부터 여론전의 양상이 달라져서, 국가 간에도, 국내에서도 각자의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는 여러 목소리들이 무수히 쏟아졌고, 의도적으로 과장, 편집, 곡해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통해 사실 확인이 불명확한 소식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습니다. 그런 단체가 정부 조직 안에도 있고 당연히 기업과 단체들도 여론전을 한다는 걸 온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분별과 해석이 더 중요해진 요즘입니다. AI가 일상화 되면서 AI의 속임수(할루시네이션)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용자가 기본 정보를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로 피해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실이 중요해진 시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그 자체로는 힘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더 큰 힘은 사실을 대하는 정서, 즉 감정과 느낌입니다. 내가 싫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런 분위기가 신앙까지 스며든 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야 은혜 받은 것이고 내가 만족스럽고 감동이 되어야 좋은 교회라고 여깁니다. 그러다가도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금세 등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바른 믿음은 그러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세는 거룩하고 담대한 결단과 헌신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사실과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는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해서 믿음의 성도는 사실을 바르게 분별하면서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의 일상에서 성취해 가야 합니다. 아나니아처럼 말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실을 확인했고 더 주의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분별을 요구합니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 그에게 전달된 정보를 따져봅니다. 계시와 사실 사이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사실을 넘어서는 결단이었습니다. 사실이어서 불안과 근심이라는 정서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사실이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결단도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믿음은 사실을 분별하되, 사실을 넘어서는 결단입니다. 이 결단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실은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사실을 넘어서는 결단입니다. 똑같은 일상, 비슷한 사람들, 달라지지 않는 주변 환경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사실 속에서 거룩한 결단으로 복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십자가의 은혜를 주셨으니, 은혜 안에서 사실과 부정적인 감정과 허상의 느낌을 넘어, 거룩한 결단을 이뤄가는 복음의 일상이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질문
1. 계시를 대하는 아나니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2.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실에 붙들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넘어서야 할 사실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