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감당할 수 없을 때

목사wannabe 2026. 7. 30. 07:13

사도행전 9장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감당할 수 없을 때

20260730

 

사울에게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나니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13). 따지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건 아나니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은혜와 권세는 바로 이럴 때 나타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때, 나를 넘어서는 일일 때 말입니다. 

최근 상영한 기독교 애니메이션 <다윗>에는 어린 목동에게 기름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양을 치고 돌아온 막내는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고 선지자 사무엘은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가 장차 사울을 대신할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그때 영화 속의 다윗이 말합니다. "내가요? 나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장면이 바뀌면서 다윗의 말도 바뀝니다. "제가 한 번 해 볼게요." 그러면 그의 날들이 창창대로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왕이 되기까지 다윗의 인생은 왕궁에서 전쟁영웅으로 살던 몇 년을 제외하면 온통 밀려나고 쫓겨난 광야의 삶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쫓겨난 다윗의 이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 영화는 영웅 다윗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불안해 하는, 우리와 똑같은 심성을 가진 다윗을 보여줍니다.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가 가장 강한 때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환상 중에 사울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이미 사울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만 들은 게 아닙니다.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공공연하게 퍼진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사울을 일부러 찾아가 만난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그걸 바라십니다. 여러 설명을 해 주십니다. 사울에 대해 반문하는 아나니아가 이해되고도 남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감당할 수 없고, 여전히 나는 부족한데 상황이 들이닥칩니다. 이럴 때는 안 해도 된다고, 너 자신을 지키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되는 그런 일들은 안 해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겠습니다만, 순종을 전제로 한 분별의 태도라면 조금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미 사울의 상태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필요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면 부족한 나를 통해서도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 가볍게 외면하고 회피하지는 않습니까? 그건 내 일이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왜 나에게 보였을까요?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신지 정직하게 묻고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일상의 작은 것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순종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순종이 먼저, 은사나 재능은 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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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아나니아가 들은 사울의 소식은 어떠했습니까?

2.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거나 감당할 수 없다고 미루고 회피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