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나여야 하는 이유

목사wannabe 2026. 7. 29. 07:34

사도행전 9장 12절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나여야 하는 이유

20260729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너무 확실한 증거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아니나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12). 먼저 주님은 다소 사람 사울, 직가라 하는 거리, 그가 기도하고 있다는 설명(11)과 더불어, 아나니아가 해야 할 일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이런 일련의 설명은 모두 아나니아를 향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아나니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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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컴퍼니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조에스더 작가의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늘 좋은 선배, 좋은 부모, 좋은 친구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나의 그림자를 감추느라 급급해지며, 실수 하나에도 나는 실패했어 라고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대신 나는 지금, 좋은 행동을 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거나 거기에 기준을 두게 되면 사람이 어려워집니다. 관계가 버거워지고 질질 끌려다니게 됩니다. 저자는 기준을 자기 안으로 가져오라고 안내합니다. 남이 볼 때 어떤가는 내 몫이 아니니,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를 점검해 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의 특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단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복음의 결과로 착하고 선한 행동이 드러나기는 하겠지만, 착하다고 복음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나에게 주시는 의미가 분명해서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여 책임집니다. 이를 교회 용어로 '거룩한 부담감'이라고도 하는데요,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은 나에게 보여주신 것의 의미를 묻고 분별하면서 회피하거나 타인에게 미루는 게 아닌, 내가 감당하겠다는 헌신을 다짐합니다. 아나니아가 그랬습니다. 사울을 만나라는 말씀에 그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을 추격해 잡는 사울의 소문은 이미 공공연하게 퍼진 정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설명이 매우 정확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말씀을 그에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약해지고 종종 비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해야 할 사명을 미루고 회피하기 때문은 아닌가? 고민합니다. 교회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 맡기신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사명과 비전을 분별하고 그에 합당한 거룩한 부담을 짊어져야 합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면,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르신 분께서 정확하게 쓰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맡겨주신 일상과 헌신과 섬김의 자리를 순종의 태도로 돌아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나에게 그 일이 보였다면 나여야만 하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재능이나 은사는 그 다음 일입니다. 관건은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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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끝부분에서 보겠지만, ​사울에게는 반드시 아나니아여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왜 나여야 하는가? 가 아닌, 나여야만 하는 일로 받아내면 좋겠습니다. 부당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 주께 하는 마음으로, 더 복음의 뜻으로 받아내고 결실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려 할 때, 주님은 기도하던 사울에게 보여주셨던 환상처럼,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신 정확함으로 결실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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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설명은 무엇입니까?​​​​​​​​​

2. 내가 남에게 미루지 않고 먼저 섬겨야 할 일상에는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