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사wannabe 2026. 7. 27. 08:59

사도행전 9장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니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20260727

 

사울이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신앙과 인생의 밤을 보내고 있을 때, 예수님은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니나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10). 부르심에 아나니아는 순종의 대답을 합니다. 이 대답은 어떤 말씀이든 순종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순종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순종이라는 하나의 주제가 그에게는 매우 깊고 중요한 주제였는데, 그만큼 성도의 삶에 순종이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순종>에서 저자는 "순종은 참된 거룩의 출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적인 동의를 넘어, 감정적인 강함과 약함 정도를 넘어, 삶 전체를 하나님의 진리에 종속시키는 것이 순종이라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순종의 삶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누리는 온전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을 계산과 타협 정도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나에게 주신 사랑이 넘쳐 흘러서 당연히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분별이 필요할 테지만, 우리 스스로가 압니다. 분별과 계산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손해이고 핍박이며 위험했어도 말입니다. 사울에게 보냄을 받은 아나니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미 순종의 마음을 갖추었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10). 이 말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대답이고, 어떤 말씀이든 행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듣고 나서 생각해 보겠다는 게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듣고 나서 따져보려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분별과 계산은 완전히 다른 태도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 있는데도 점점 더 나약해지는 이유는 분별과 순종이 아닌, 계산과 타협이 우선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 보장된 무엇이 아닌 아니니아와 같은 대답, 즉 순종의 태도와 결단일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완성하셨고, 성령님을 통해 복음의 결론으로 이끌어 가시는데 정작 내가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계산하고 다른 것을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분별하게 해 달라고, 순종하겠다고 결단하는 일이 매일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일 때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을 대하는 마음이 순종이십니까? 순종이 분명하십니까? 이 대답이 정말 중요합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순종의 하루와 욕구의 하루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대단한 뭔가를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소소한 것들, 특히나 관계에 있어서의 일상적인 선택과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결단하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뜻이 되고 믿음으로만 살고, 나를 통해 이루실 복음의 능력으로만 대하는 순종의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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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아나니아의 대답은 어떤 의미입니까?

2. 오늘 내가 순종으로 채워야 할 일과 관계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