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9절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며
20260724
다메섹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니라"(9). 암흑. 그의 눈이 안 보여 앞을 모르듯, 그의 삶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보다 사울 자신이 답답하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이런 날들이 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받아내야 하는 날들 말입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성공신화를 지녔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던 60~80년대의 폭풍 성장은, 해방과 전쟁 후 폐허에서 일궈낸 성공 신화입니다. 이때 경제성장과 더불어 교회도 성장했습니다. 수도권 근교의 산마다 기도원이 들어섰고, 연일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수도권이 계발되면서 전 국민이 수도권을 향했습니다. 새로운 도시에 아파드가 들어섰고, 주거 환경이 조서오되자 바로 거기에 교회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성장 배경입니다. 이것을 섣부르게 부흥이다, 아니다 하기엔 논쟁이 많겠습니다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도시에 있는 교회만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때부터 지방과 시골의 교회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교회는 복음과 성공을 섞었습니다. 전통적인 기복 신앙이 산업화의 성공 신앙으로 포장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은 전부,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처럼, 기도가 부족하고 헌신이 부족해서 나타난 일처럼 여겨졌고, 교회에서 실패를 담아내고 아픔을 보듬는 일들은 점점 옅어졌습니다. 교회의 지나온 여정이 이랬으니, 고난에 대한 이해와 깊이에 너무 취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영혼의 밤 같은 정말 중요한 신앙 개념이 들어설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많은 곳에서 아픔과 싶패, 좌절과 영혼의 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짧은 글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응답이 없는 시기, 기쁨이 나를 지나간 것만 같고, 막막하고 무기력한 것만 같은 때를 보여줍니다. 이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신앙은 필연적으로 그런 때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전의 열심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빚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사울도 그랬습니다. 그가 죄를 지었습니까?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예수님이 임재하셨고 그는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사흘,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볼 수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보는 것이 무의미했고 먹는 일이 무가치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사울을 다시 빚으실 일을 차곡차곡 이뤄가고 계셨습니다. 이 신뢰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잘 될 때만 복일까요? 이는 반(反) 성경적입니다. 잘 되지 않을 때도 주님의 뜻 안에 내가 있습니다.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괜히 나만 억울한 것 같을 때, 그럴 때에도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아프고 쓰라린 그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나를 복되게 이끄십니다. 심지어 실패도 주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주님으로만 충분합니다. 내 앞은 어두워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대상은 앞이 아니라 하늘, 오직 내 주님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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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눈이 멀었던 사울의 사흘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2. 잘 풀리지 않는 삶이지만 여전히 내가 해야 할 믿음의 선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