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은혜가 덮칠 때 생기는 일

목사wannabe 2026. 7. 14. 21:14

사도행전 9장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은혜가 덮칠 때 생기는 일

20260715

 

성난 황소처럼 기세등등한 사울이 권력과 충성의 상징인 공문서를 들고 다메섹으로 향합니다. 바로 그 길에서 우리가 아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3). 사울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임했다고 하기엔 모자랍니다. 은혜가 그를 강권적으로 덮쳤습니다. 그의 삶이 고꾸라졌습니다.

교회 전문 용어 중에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익숙한 이 말은, 익숙해진 어느 것이나 그러하듯, 오해와 착각이 큽니다. 흔히 교회에서 '은혜스럽게 하자'고 할 때, 이 말은 은혜의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껄끄럽지 않도록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덮어주자고 할 때 은혜스럽게 하자고 하는데, 본래 교회에서 사용하는 은혜의 뜻과는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본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사건이나 경험을 뜻합니다. 은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전적 은혜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덮칠 때를 뭐라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전적 은혜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는 다 통용이 됩니다. 이 말의 오용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정서를 떠올립니다. 평화롭고 따뜻하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종종 목격하는 은혜의 장면이 꼭 따뜻하다거나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기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났다면 정말 은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혼을 앞둔 처녀가 임신을 했다니요.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입니다. 벼락 맞을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벼락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늘의 빛이 사울에게 비쳤습니다. 거기 많은 일행이 있었지만 오직 사울만 경험한 일입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이라니 정말 은혜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 빛에 사울의 눈이 멀고 사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날벼락입니다. 어서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사울의 계획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은혜의 순간이 이렇습니다. 몇 십 년의 계획이 무너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까운 이들로부터 왜 그러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고,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부러울 것 없는 의사가 선교지로 가 목회자와 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합니다. 부자가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내어놓습니다. 김밥을 팔아 평생 모은 3억을 할머니 권사님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기꺼이 기부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은혜가 아니고서는 해석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더 큰 돈을 기부하거나 선행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지만, 정작 그들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일은 아닙니다. 은혜는 나를 지우고 하나님의 뜻을 세웁니다. 은혜는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사는 일입니다. 해서 은혜는 나의 성공을 넘어 하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은혜가 덮칠 때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은혜가 없다는 점입니다. 적당히 믿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은혜를 주셨어도 따지고 비교하고 선택하려 합니다. 이러니 회심은커녕 작은 변화도 없습니다.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뒤집어 놓습니다. 그후엔 순종을 요구하고 세상과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도 아쉽지 않고 아깝지 않습니다. 은혜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충격적입니다. 내가 달라진다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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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서울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2. 은혜로 고백했던 변화가 있습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