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40절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그대 이름은 빌립
20260710
성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한 빌립의 행적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40). 여러 성을 지났다는 것은 그가 지중해 해변길을 따라 도시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빌립의 순종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방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것, 오늘날에도 이런 빌립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전도는 대부분 '오라'에 초점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게 만드는 것이 전도의 절대가치와 목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선교로 이름합니다. 국내든 국외든 단기 선교가 시즌 사역처럼 자리 잡았고, 단기 선교가 없는 교회는 교회답지 않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이렇게 오라는 것과 간다는 것을 이벤트로 고착화 시켰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회로 오라고 하는 복음의 잔치도 필요하고,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아가는 아웃리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즌 이벤트처럼 어느 때는 하고 어느 때는 안 하는 식의 행태는 일상의 복음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평범한 삶에서 살고 전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우리는 빌립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에 순종한 빌립은 사도가 아닙니다. 그는 교회 공동체가 기도하며 선출한 집사였습니다. 당시 집사의 역할이 목양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목회자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사도와 구별된 신앙 공동체의 직책으로 보아야 합니다. 굳이 현대 교회로 치환하자면 빌립은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그런데도 빌립은 성령에 순종하여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순회합니다. 살기 좋은 어디에 머문 것이 아니라, 머물게 하실 때까지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훗날 바울처럼, 빌립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신앙공동체를 세웠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1장에서 다시 빌립이 등장하기까지, 그는 가이샤라에 머물렀습니다. 이 모든 여정을 사도행전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그가 "찾아가는 복음 전도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마냥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멈추게 하실 때까지) 찾아갔습니다. 성육신이 죄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라면, 빌립은 순종으로 이방 땅에 나아간 성육신의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도의 일상이 찾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훈련하고 내보내야 합니다. 교회로 모이게 하는 것에 힘쓰는 것처럼 삶의 자리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강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은 더 모으려고만 합니다. 심지어 일상에서도 교인끼리만 어울리도록 가르치는 곳도 생겼습니다. 이런 결과로 교회는 섹트sect화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전도도 선교도 아닌,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조직으로의 몰락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의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빌립처럼 복음으로 찾아가고 복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성령에 순종하여 자기를 내어주는 일상의 복음이 절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날의 빌립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립의 삶이 내 삶이어야 합니다. 해서 오늘도 나를 보내신 곳에서의 복음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진지하게 이 도전과 고민을 끙끙 앓으며 짊어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를 따르며 에수를 말할 때, 정말 그 말이 믿어지는 신앙의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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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빌립이 다시 나타난 아소도는 어디인가요?
2. 오늘 내가 복음으로 감당하고 십자가 사랑으로 완성해야 할 일상의 전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