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기쁨을 잃은 교회

목사wannabe 2026. 7. 9. 08:13

사도행전 8장 39절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기쁨을 잃은 교회​

20260709

 

예수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은 빌립을 어디론가 데려가셨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러울 수 있는 이 상황에서 남겨진 내시에 대한 설명이 의미심장합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그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시 못하니라"(39). 내시는 기뻐했습니다. 혼자 남겨진 상황인데도 기뻤다는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래적 특징 중 하나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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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분별하다>로 기독교 신앙의 삶을 기고하는 말론 드 블라시오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잃어가는 전형적인 모습 5가지를 지적합니다. 1.성경 읽기가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2.교회와 예배가 시시해집니다. 3.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서 4.자연스럽게 세상이 즐거워집니다. 5.결과적으로 죄가 자연스러워집니다. 이 다섯 가지를 지적하면서 블라시오는 기쁨을 잃어버린 신자의 상태를 경고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재미와는 좀 다른 정서입니다. 재미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얕은 호기심과 흥미를 말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기쁨은 고난과 좌절, 실패를 기꺼이 짋어지게 하는 근원적인 충만함을 뜻합니다. 성령의 권세가 폭발적인 담대함이라 해석할 때, 기쁨은 그 담대함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너무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 못 배깁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순주 자랑하라면 돈을 내고 하라며 서로 우스개 소리도 합니다. 흘러넘치는 기쁨이 있을 때 사람은 역경이 다가와도 작아지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빌립을 통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실 말씀의 상황은 당황스럽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자 성령이 빌립을 어디론가 데려가셨습니다. 엘리야처럼 하늘로 데려가신 것인지,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신비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고, 내시만 혼자 덩그러니 남았던 것입니다. 이런 순간을 사도행전은 그저 덤덤히 기술하는데, 그가 기쁨으로 돌아갔다,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이제 자신의 가던 길을 갑니다. 가던 길인데도 전과 전혀 다른 길입니다. 교부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의 복음 증거자가 되어 예수의 십자가를 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떤 도움도, 어떤 가르침도 없이 홀로 그 길을 가면서도 그가 포기하거나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던 힘이 무엇일까요? 복음의 기쁨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되찾아야 할 것이 복음의 기쁨입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위로가 아닙니다. 삶을 근원적으로 바꾸게 하시는 복음의 기쁨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충만함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 있어 기쁠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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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있으십니까? 복음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면, 복음보다 더 집착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부가 아닐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필요한 것은 더 나은 환경, 조건이 아니라 복음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복음만이 나에게 힘이요 능력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구해야 할 것, 복음을 구하고 복음의 기쁨을 누리십시오. 다른 건 그 다음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다른 것은 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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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성령이 빌립을 데려가신 후 남겨진 내시는 어떠했습니까?  ​

2. 복음의 기쁨보다 내 마음에 더 커진 것들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더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