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35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하나님의 소통 방법
20260706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빌립은 고난 받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전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 이 글에서 시작해서 전했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했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이것입니다. '이 글' 즉,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은 신령해 보이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신비한 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신앙을 그런 신비로 오해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일들의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그루밍과 가스라이팅 방식이 그러했고, 이런 표현이 조직 구조와 직책으로 연결되면 종교권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런 표현이 목회자에게서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개인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올바른 검증도 없이 행동했다가 갈등과 상처가 된 일도 흔합니다. 정말 하나님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말씀하실까요? 물론 그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의 전통과 역사에서 보편적 방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비는 육성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입니다. 고든 스미스의 <분별의 기술>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올바른 기준 4가지가 나오는데, 그중 가장 핵심이 바로 성경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보편적 소통 방식은 성경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성경을 통해서 십자가 복음을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 하늘의 뜻과 섭리를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가장 보편적인 은혜의 방법을 놔두고 특별해 보이는 일만 쫓아가는 것이 건강한 신앙일까요? 사도행전의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에피소드 역시 하나님의 보편적 소통 방식으로서 성경을 말해 줍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 서의 고난 받는 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께 순종하여 내시에게 달려간 빌립이 그에게 말씀의 뜻을 해설해 줍니다. 당시엔 성서주석도, 해설서도 없었을 테니, 이 상황과 두 사람의 대화는 성령의 이끄심이 분명합니다. 빌립은 선지자의 말씀을 예수의 복음으로 설명했습니다. 고난 받는 종은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임 당하신 십자가의 예수를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성경 말씀으로 성도에게 다가오시고 말을 거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의 빛을 비추셔서 말씀을 톻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가장 단단한 기반은 말씀의 반석 위에 서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 말씀이 내 기준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선되지 않은 하루는 내가 살아온 경험과 습관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기준이 된 하루는 죄를 결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 앞에 서십시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깨닫고, 말씀으로 나에게 말을 거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들으십시오 누구에게 전해 들은 말씀도 좋지만, 오늘 직접 말씀을 읽고 몸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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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빌립은 선지자의 글을 통해 무엇을 전했습니까?
2.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를 점검하고 말씀의 삶을 계획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