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32절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고난 받는 하나님의 사람
20260701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던 성경은 아마도 칠십인역 이사야 서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는 고난 받는 한 사람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32). 끌려가고 말도 못하는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지금을 바꿉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 중에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가 있습니다. 이를 잘 설명한 책이 <리딩 지저스>인데요, 성경의 모든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성경 이해의 방법입니다. '구속사적 관점'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단순히 윤리도덕적 내용이나 가치관 교육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성경 이해입니다. 물론 구약은 구약대로, 신약은 신약대로 성경 저자의 상황과 배경, 그 성경이 드러내고자 하는 독립적인 장르와 문맥이 있겠습니다만, 각각의 이해를 하나로 연결하는 성경 전체의 맥락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모든 성경을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읽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 결과로, 나도 순종으로 예수의 삶을 사는 신앙생활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삶과 나의 삶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예수를 따르는 삶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크리스천,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바로 이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혼자 성경을 읽던 내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지자의 글을 과거 역사 속에서의 사건으로 보았을 뿐, 메시아의 고난으로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이사야의 글을 고난받는 메시아로 설명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끌려가고 죽임 당하는 속죄의 어린 양을 설명합니다. 이 복음으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짊어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나를 향해 자기의 생명을 부어주신 구원자의 사랑으로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된 복음의 필연을 해설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오늘도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른 이 삶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고난처럼 보이겠습니다만, 믿음의 사람은 압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삶이며 감사한 순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내가 구원 받았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만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를 믿는 우리도 고난으로 향합니다. 고난을 피해가지 않고 고난을 짊어지고 고난을 뚫고 갑니다. 성경의 말씀은 메시아의 고난으로 나를 깨닫게 하고, 나 역시 사랑의 수고와 나의 십자가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고난을 인정하고 짊어지는 오늘이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나도 짊어지는 하루여야 하겠습니다. 기꺼이 그래야 합니다.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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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내시가 읽던 성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2. 고난 당하신 주님으로 인해 내가 구원 받았고, 나고 십자가의 길로 이끄신다면, 오늘 내가 순종해야 할 고난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