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30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난독에 빠진 신앙
20260629
성령에 순종하여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가까이 간 빌립은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30).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분명 읽는 것이 낫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바르게 읽는 것입니다. 엉뚱한 이해는 깨달음이 아니라 합리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깨닫는 것은 현대 한국교회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난독의 시대>의 저자 박세당 선생님은 "문해력의 반대는 문맹이 아니라 난독"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난독증과 언어 연구를 통해 선생님은 읽기와 쓰기, 그리고 이해에 이르기까지 뇌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난독증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하는지 책을 통해 안내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매우 수준 높은 평준화를 이루고 있어서 문맹률이 1% 미만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교육 수준인데요, 진짜 문제는 읽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읽어도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박세당 선생님은 난독의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이해하는 일이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문자 메시지의 짧은 텍스트도 중간중간 놓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기독교는 읽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고등 종교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성경을 읽는 것, 읽고 바르게 해석하여 오늘날 삶의 자리로 가져오는 일은 매우 정교한 작업입니다. 문제는 이런 정교한 작업에서 발생하는 난독과 그로인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유독 한국교회 안에서는 문자에 대한 이해와 갈등이 심각합니다. 특히나 오래 전에 작성된 성경의 배경, 설상가상으로 너무 오래된 성경 번역의 배경을 무시한 채, 글자 하나에 집착하는 태도는 문체가 많습니다. 기독교 이단은 한국 태생이 많은데, 이런 이유 중 하나는 성경 배경을 무시한 교회의 문자주의가 원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은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바른 태도를 사도행전의 빌립이 보여줍니다. 성령에 순종하여 광야 길로 내려간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가 탄 수레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성경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그에게 달려가 말을 겁니다.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읽고 있는 성경의 의미를 아느냐는 질문입니다. 이방인이었던 내시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보면서 구원자 예수를 깨닫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빌립은 성령에 순종하여 말을 걸고 그에게 말씀의 뜻을 바르게 전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읽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충 읽고 잘 모르겠다 할 게 아닙니다. 대충 읽으면 대충 정도의 은혜입니다. 대충 읽어서 문제입니다. 그것으로 잘못 적용하고 타인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빌립처럼,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말씀을 바르게 읽고 깨닫는 성령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바르게 깨닫고 적용하는 일상의 영성이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모르겠다는 신앙 난독은 어쩌면 말씀에 깊이 들어가기는 귀찮아 하는 마음의 증상은 아닐까요? 주일을 보내고 시작한 월요일에, 어제의 말씀은 무엇이었고 오늘 내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곱씹고 되새김질 하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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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빌립의 질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2. 말씀의 뜻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적용해야 할 말씀 실천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