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28절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한 사람을 위한 여정
20260624
사마리아 성에서 나와 순종으로 광야길로 나아간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그는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8). 많은 사람을 뒤로 하고 한 사람을 만납니다. 복음 안에서의 참된 관계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헌신입니다.
한국교회에 유행처럼 오가는 목회 형태가 있습니다. 부흥회가 유행했던 시절에는 유명한 강사를 모시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았고, 기도원이 유행했던 때는 전국에서 기도원에 몰려들어 발 딛을 자리도 없었기도 했습니다. 전도집회가 유행할 때는 대단한 선물과 유명인의 간증으로 들썩거렸고 사경회와 성경공부가 대세일 때는 전국 기독교서점에 성경공부 교재가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제자훈련도 그랬는데, 목회자들은 앞다투어 제자훈련을 배우려고 했고, 한때는 대기만 1~2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회는 이 모든 것이 섞여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고 삶의 신앙으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저 사람 모으기가 되어버렸고, 사람 모으고 부흥했다는 소리가 안 들리면 은근슬쩍 다른 것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기도원이든 집회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든 다 필요합니다. 교회의 체질에 알맞게 사용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유행처럼 옮겨가는 이유는 그 목적이 올바른 생활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람 모으기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이 부흥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어도 진정한 회심과 매일의 신앙적 변화로 성화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부흥입니다. 해서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써 반드시 한 사람의 삶에 집중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하고 많은 사람을 모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한 헌신과 지난한 그 여정을 사랑과 순종으로 짊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빌립은 광야길을 지나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이 둘은 만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데도 성령은 사마리아 성의 성공적인 복음전도를 뒤로 하고 빌립을 광야로 가게 하셨고, 에디오피아 고위 관리인 내시는 성경과 복음에 대한 갈망으로 이끄셨습니다. 이렇게 복음 안에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기적처럼 마주합니다. 내시는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읽었다는 말의 뜻은 소리내어 낭독했다는 뜻입니다. 그 소리를 빌립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서, 순종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빌립은 내시가 읽는 구원자에 대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풀어줍니다. 이 한 사람을 위한 긴긴 여정이 그려지십니까? 이런 방식으로 복음과 사랑이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입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의 사랑과 순종이 있었습니다. 해서 나도 이렇게 한 사람을 위한 헌신과 사랑이,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계를 성경은 반복적으로 '교회'라고 설명하고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는 건물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도 좋지만 먼저는 한 사람을 향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한 사람이어야 하고, 교회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복음은 인격적이고 깊은 신뢰의 관계를 바탕으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한 사람을 향한 순종을 결단하십시오. 성숙한 인격과 진심의 순종으로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품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너와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현되고 증명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순종을 물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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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빌립과 내시가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2. 내 주변에 보내주신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는 오늘 어떤 순종을 결단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