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18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자본주의에 물든 교회
20260610
사도들의 안수 기도 후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본 시몬은 놀라며 그 권능을 돈으로 사고자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에게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18). 사도행전이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보아, 시몬의 의도가 불순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거래를 하려던 시몬의 모습이 익숙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사고가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어딜 가도 주식 이야기를 듣습니다. '국장이 불장'이라는데 주식에 무지한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식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목회자들은 투기와 다르지 않다며 예수 믿는 자들은 주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식을 하고 말고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사고와 문화에 교회도 물들어 버린 것입니다. 교회의 세속화가 여러 면으로 드러납니다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사고, 즉 돈을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과 표현 방식이 깔려 있습니다. 교회는 크기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면서도 여전히 몇 명인지, 헌금이 얼마인지 따지는 일이 그렇습니다. 교회를 결정할 때 여러 조건과 환경을 따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다를까요? 한국 교회의 목회자 청빙을 보면 교회의 세속화가 왜 나타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가히 돈의 세상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도 돈에 관련된 사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사마리아에서도 여지없이 돈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드러난 은사를 시몬이 돈으로 사려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임재와 나타난 변화가 즉각적인 것들도 있었을 테고, 지속적인 어떤 변화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였던 시몬이 세례를 받고 사도들을 따라다니면서 이런 현상을 반복적으로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놀라서, 어쩌면 기대와 갈망으로 요청합니다. 돈을 줄 테니(18) 나에게도 그 권능을 주시오(19). 시몬의 이런 요청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본문이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다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일을 돈으로 거래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식의 거래 방식이 자본주의적, 물질주의적 사고입니다. 시몬은 은혜를 갈망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권능을 갈망했습니다. 자기 돈을 주고서라도 그것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힘과 권세를 소유하려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래의 방식이 문제입니다. 이는 지독한 자본주의적 사고입니다. 우리는 다를까요? 내게 나타날 어떤 응답, 은혜와 복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을 향한 갈망과 소유 욕구(욕망), 무엇보다 거래와 비슷해진 기복적 태도 등, 우리 안에도 이미 시몬같은 자본주의적 사고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는 모든 태도, 그래서 나타나는 거래 같은 기도는 바른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인지를 분별하지 않는다면, 평생 교회를 다니고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해도 십자가 복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소유와 거래의 방식이 내게도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내게 이루어질 응답이라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내게 이루어질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입니다. 성도의 구할 것은 모두 여기에 초점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삶의 기반이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사고와 신앙의 세속화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를 내어주는 일들이 오늘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복음은 내게서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바꾸겠다고 아우성인 것일까요. 오늘 나의 십자가가 중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 십자가여야 합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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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마리아의 시몬이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2. 자본주의적 사고와 가치를 넘어서는 것은 희생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십자가 복음은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