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하나 되게 하시는 능력

목사wannabe 2026. 6. 9. 06:49

사도행전 8장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하나 되게 하시는 능력

20260609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했더니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7). 이는 공식적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예수의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회복의 증언입니다. 그 중심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한 뜻, 하나 됨으로 나타나고 증명됩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가 여럿입니다만,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하나는 공교회성입니다. 가톨릭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바티칸의 권위 아래 하나의 교회를 지향합니다. 이와 달리 개신교회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수 백 개의 교파와 교단으로 분리되어 개교회성이 강합니다. 특히나 한국교회는 장로교만 해도 3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공교회성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수 천 개의 교회가 있지만 각자도생이 된 안타까운 상황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공적신앙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적 영역에 대한 인식과 공공선을 지향하는 신앙적 태도가 유독 개신교회들에게서 옅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개교회성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공교회라고 말합니다. 사도신경으로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이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과 갈등이 빈번하고 교회끼리의 연합도 많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는 점점 더 벼랑으로 내몰리는데, 그 현실을 짊어지고자 하는 일조차 극소수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바라보는 사도행전의 걸음은 가슴 뛰게 하는 희망입니다. 예루살렘에 닥친 대환란과 핍박으로 거의 모든 성도가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복음의 확장으로 전환되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졌는데, 사도행전은 그 첫 번째로 사마리아를 등장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대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였던 것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에 베드로와 요한이 왔습니다. 그들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재했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성령 임재의 증거를 방언이나 예언, 치유와 신비한 기적 같은 것을 유추하기도 합니다만, 사도행전은 성령의 선물이 무엇인지 의도적으로 침묵합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은사를 강조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관계 회복과 새로운 하나 됨을 드러내려는 의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지독하게 분리되었던 유대와 사마리아가 복음으로 하나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성령의 임재가 있습니다. 사도의 대표인 베드로와 요한이 거룩한 연결이 되어 유대와 사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성령 안에 같은 교회로, 복음의 한 뜻으로 연합된 것입니다. 성령의 결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하나 됨'입니다. 나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너와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이 성령의 증거입니다. 

​분리와 단절이 문화와 가치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는 나를 지키기 위해 손절하는 것을 지혜로 여깁니다. 그래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목적 자체가 분리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나와 맞는 사람만 관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이렇기에 믿음의 성도가 세상에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로, 희생의 십자가 복음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게 하시는 성령의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앞의 너를 용납하지 못하고 더 나은 관계와 가치로 성숙하게 나아가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무슨 구원과 천국을 말하는 걸까요?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더 수용하면서 지혜롭게 감당해야 할 관계를 기도하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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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더니 성령이 임했다는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2. 내가 더 몸과 마음을 써야 할 삶의 자리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섬기며 하나 될 것인지 꾸준한 적용을 정하고 실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