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죽음의 실패

목사wannabe 2026. 5. 19. 06:33


사도행전 8장 2절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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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실패

20260519


박해로 흩어지면서도 남아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소수의 무리였을 것인데, 그들은 스데반의 장례를 책임졌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울더라"(2). 죽고 도망가고 흩어진 교회를 보면 예수 믿고 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일이 이제 시작입니다. 죽음도 막지 못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을 우리는 쉽게 듣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어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을 한다는 건 모순입니다. 물론 죽지 않을 방법이 없기에, 죽기 전까지의 인생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죽을 뻔 했다, 죽을래?, 죽고 싶다 등등 일상에서 죽음과 관련한 말이 의외로 많고 많은 이들이 쉽게 사용합니다. 모두 죽음을 최종적인 결말로 여기는 말들입니다. 정말 죽으면 끝일까요? 기독교 신앙은 이런 가치에 저항합니다. 오히려 죽음을 신앙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죽음 너머를 바라보게 합니다. 죽음을 통해 죄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죄와 죽음의 실패를 선언합니다. 그 중심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죽음도 막지 못한 일들을 숱하게 보여줍니다. 아니,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교회가 성장하고 이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가히 죽음의 실패입니다. 스데반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와 처음 신앙 공동체의 독특한 섬김과 나눔, 구제로 초대 교회는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저항과 죽음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핍박을 겪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도망가고 흩어지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믿고 잘 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흩어짐이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흩어져서 복음의 증인으로 나아갔습니다. 위대한 선교의 역사가 강제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이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스데반을 장사했는데, 경건한 이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대교의 율법에 따르면 종교재판으로 공개처형을 당한 이들은 공개적으로 장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숨어서, 보이지 않게 시신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경건한 사람들은 크게 울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숨기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애도한 것입니다. 죽음도 막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이 그랬듯이 이 사람들도 대환란의 예루살렘 핍박 속에서 언제 죽을 지 모르지만 꿋꿋하게 신앙과 사랑과 복음을 짊어졌습니다. 훗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도들과 경건한 이들은 교회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죽음이 어쩌지 못한 이들이 교회로 드러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와 성도는 죽어야 사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죽지 않으려 기를 쓰는 것은 우리 신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해서 오늘도 죽고 사는 복음입니다. 내가 죽어야 복음이 드러납니다. 허락하신 오늘을 살면서 무엇에 대하여 죽고, 그 죽음으로 누구를, 어떤 가치를 살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존재로, 빛을 비추는 우리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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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핍박에도 남아있던 이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2.. 한 알의 밀알처럼, 오늘 내가 죽고 썩어져야 할 관계나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