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용서의 사람
20260515
증인들이 돌을 던지고 이후에 거기 모인 성전주의자들이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돌을 맞으며 스데반이 했던 행동은 몸부림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60). 복음으로 인해 순교 당하는 스데반의 입에서 원망과 복수가 아닌 용서와 화평의 기도가 흘러넘쳤습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극복한 인물로 대부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만델라가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까지 그의 주변에서 스승과 동역자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입니다. 데스몬드 투투는 성공회 사제가 되고자 29세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흑인이었던 그는 영국에서 백인에게 말을 걸어도 매를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일부러 아는 길도 물어서 가곤 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영국 성공회의 사제로 편히 살 수 있었지만, 조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인종차별의 극복과 그 핵심 세력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극도로 거부했습니다. 투투 대주교가 강조한 것은 용서였습니다. <용서 없이 미래도 없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투투 대주교는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 국가 회복의 과제를 위임받아 "진실화해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발적인 고백과 참여, 그리고 용서로 사회적 합일을 이끌어냈습니다. 엄청난 반감과 원망, 위협이 있었지만 투투 대주교는 끈질기게 용서를 추구하면서 십자가 사랑을 실현하고자 애썼습니다. 이런 공로로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상급은 용서를 통해 나타난 사랑과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용서는 성경의 중요한 메세지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주와 심판이 아니라 용서였습니다.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는 용서의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두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는 예수님께 영혼을 드린다는 고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돌을 던지는 자들에 대한 용서의 청원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이 죽음의 자락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백부장에 회심했던 것처럼, 스데반을 통해 사울이 회심할 것입니다. 위대한 교회의 역사의 출발점이 바로 스데반의 기도였습니다. 용서가 핵심이었습니다.
용서는 대단한 게 아닙니다. 우리 시대는 스데반처럼 돌을 맞을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상에서의 작은 용납과 이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건 쉽지만 이해하고 용서하는 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면 손해 본다는 세속적 가치와 문화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복수가 당연하고 복수가 유행인 세상에서 믿음의 성도는 달라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용서가 우리의 몫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나는 용서해야 합니다. 어쩌면 가장 숭고한 복수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와 용납의 십자가로 사십시오. 죄를 덮자는 게 아닙니다. 일상의 관계에서 조금 더 너그럽게 살자는 것입니다. 이 태도가 많은 것을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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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2. 오늘 내가 조금 더 용납해야 할 대상이나 상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