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귀를 막은 사람들

목사wannabe 2026. 5. 13. 07:47

사도행전 7장 57절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스데반의 예리한 변론과 지적에 종교재판장에 있던 이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 모양새를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57). 귀를 막고 달려드는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저항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듣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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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량기업의 조건>의 저자 톰 피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세기가 말하는 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청하는 리더의 시대가 될 것이다. 경청의 힘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니 말하는 것보다 더 매혹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은 톰 피터스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강조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특히나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들으려는 태도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려할 뿐, 들으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경청은 말하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려보려는 섬김의 자세입니다. 해서 재능이나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습득하고 실천해서 길러지는 삶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리더가 되려면 경청이 필수인데 의외로 리더들은 경청에 취약합니다. 이는 구조적인 두 가지의 문제일 것인데, 하나는 능력주의의 폐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듣기 좋은 말만 듣는 우물 안 개구리 현상 때문입니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정상에서 넘어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교회와 목사는 예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스캔들은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습니다. 스데반과 성전주의자들의 갈등은 이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지적에 종교재판장에 있던 성전주의자들이 귀를 막고 달려들었습니다. 귀를 막았다는 말은 움켜쥔다는 뜻인데, 실제로 두 손으로 귀를 움켜쥐듯 막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들이 움켜쥐고 놓지 않는 신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지켜온 성전과 율법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어 귀를 막고 마음을 막아버렸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가 서 있다니, 이런 신성모독은 더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들은 스데반에게 돌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모양새를 귀신들린 자가 맹목적으로 달려들 때 사용했던 단어를 가져다 썼습니다. 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 지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표현입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발견해야 합니다. 듣기 싫을 때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한지, 어떤 말이 마음을 긁어 놓는지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듣지 않을 때 결국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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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깊어지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듣지 못하면, 듣지 않으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결국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죄의 모습으로 살고 맙니다. 해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귀를 막은 이들을 보며 듣는 마음과 태도를 달라고 기도하는 오늘이라면 좋겠습니다. 잘 듣고자 할 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됩니다. 변화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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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듣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을 사도행전은 어떻게 표현합니까?​​​

2.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무엇인가요? 왜 그랬는지 성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