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53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적독과 읽기의 차이
20260430
스데반의 변론, 그 마지막 문장은 허망한 성전주의자들을 향한 격렬한 지적입니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53) 율법을 소유한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다니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이 차이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적독(積讀)이라는 말은 책을 쌓아두는 것을 뜻합니다. 본래는 책을 쌓아두기만 할 뿐 읽지 않는 이를 향한 비아냥으로 사용된 말인데, <적독생활>의 저자 타이키 라이토 핌은 좀 다르게 말합니다. 그는 "다 읽지 못해도 사두어라."고 주장하면서, 책을 쌓아두는 일의 가치와 효용을 재해석했습니다. 읽지 않은 책이 책장이나 책상에 쌓여가면 죄책감이 들기도 하는데, 저자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보다 언제나 더 매력적"이라고 하면서, 읽지 않은 책들에 둘러싸여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읽지 않은 책이 주는 미지를 즐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출판계 시장이 급격하게 어려워진 이 때에 정말 적실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썸원의 뉴스레터>에서 윤성원 씨는 호주 연구진들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책을 꺼내 읽지 않아도 청소년기에 단지 책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만으로도 문해력과 수리력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결과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변론이겠습니다만, 책을 사지 않는 사람보다야 책을 쌓아두더라도 자기 주변에 책이 있는 사람이 더 책을 읽지 않을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적독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저자의 글을 읽고 위로가 되긴 합니다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전혀 다른 지평을 살아가고, 한번 읽은 사람보다 두 번 읽은 사람, 내용을 반추해 본 사람은 또 다른 경계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바로 이 지점을 책망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모세의 명령대로 지켰습니다. 앉으나 서나, 나가거나 들어와도 그들은 율법을 암송했고 손목에, 머리에 말씀구절을 달고 살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았는데도 스데반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너희는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53). 쌓아두기만 해도 달라진다는데 그들은 오랜 시간을 역사를 반성한다면서 율법을 지켜왔는데도 율법의 주인, 율법의 완성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도리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이 지켜온 율법을 가지고 말입니다. 적독(積讀)이라는 놀림이 딱 맞는 모습입니다. 문제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설교를 잘 들어도 교회 밖에서의 말투 하나가 안 바뀌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 생활은 잘해도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은 신앙적이지 않은 모습도 비일비재합니다. 세상의 밈이 되고 놀림이 된 교회가 아프고 아픕니다.
말씀을 들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면 그것이 내 삶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지켜야지, 하는 적독의 태도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언젠가 지키기도 할 것이지만, 지금 당장 지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순종이라고 말할 것이며, 어떤 부분을 내어놓아야 하고, 더 예수를 닮아야 할 생활의 부분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합니다. 신앙은 저절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신 복음은 우리를 죄와 피 흘려 싸우고도 승리하게 하신 권세입니다. 쌓아두지 말고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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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스데반이 책망하는 율법주의자들의 오류는 무엇인가요?
2. 쌓아두지 않고 지금 지켜야 할 오늘의 신앙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